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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an 26. 2024

11.결정보다 결심

삶의 태도를 바꾸는 방법

(23.2.8.00:57)


퇴근길 운전대를 잡은 손이 무겁다. 평소에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지나가는 길인데, 오늘은 차 안이 고요하다. 신호에 반복해서 걸렸다. 가다 서라는 반복. 가만히 오늘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웬만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한숨만 나온다. 좋지 않은 일일수록, 잊으려 할수록 반대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순간 기억. 오늘따라 퇴근길이 더 밀렸다. 이럴 때를 두고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나.

 책상 위에 놓인 출력물 사이에 이미 결재를 끝낸 서류가 있었나 보다. 그걸 못 보고 정리하다가 세 절기에 그대로 넣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미리 책상을 정리하지 않았던 시간과 조금 더 살피지 못해 일어난 일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거의 매일 글쓰기에 매달려 있는데 쓰고 나니 거의 다 후회와 반성, 다짐이다. 곧 있으면 어느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이, 불혹인데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다. 나와 똑같은 오늘 하루를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뿐이다. 특히 크고 작은 성과를 내었다는 직장 동료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지?'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올해도 벌써 한 달하고도 그의 반이나 지났는데,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의 질문의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초조함과 불안함. 이럴 땐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뿐. 한 번은 퇴근 후 무얼 하느냐는 직장 동료의 사적인 질문이 있었다.

"보통은 책을 들고 도서관을 가거나 카페에 들러 글을 씁니다. 운동하러 갈 때도 있고요."

"책이요? 글쓰기요?"

 당황하는 이유는 뻔하다. 자기 주변에서 책 읽는 사람은 가끔 봤어도 글 쓰는 사람은 없었다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나도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써왔다는 말을 들으면 긴 시간 동안 반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다. 아직 번듯한 책 한 권 쓰지 못했음에도 그런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잊기 위한 노력의 흔적.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과정이 필요했다.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한 발악. 길지 않은 점심시간을 어떻게든 쪼개어 그날의 일기를 쓸 때도 있었는데, 등 뒤로 들리는 말이 귀에 박힌 날도 있다. ‘참, 유별나'

 분위기상 느껴지는 말의 의미. 어쩌면 남다르다는 말보다는 특이하다는 말에 가까웠을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고 쓰는 사람은 더 극소수일 테니까.

 글쓰기를 반복할수록 드는 생각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양만 다를 뿐 비슷한 상황이 많다는 것과, 쓰는 동안 만큼은 반성과 후회보다 다짐과 계획이 더 많아진다는 점이다. 그걸 흔히 공감이라 부른다. 내가 남겨둔 기록을 읽은 사람 중 실패와 눈물, 슬픔에 눈길이 더 가는 건, 지금까지의 자신의 경험이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 때문일 것이고.

 나 역시 이별, 사업 실패, 병을 극복한 수기 등을 읽을 땐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느끼며 가슴 먹먹할 때가 많다. 정작 나는 불치병에 걸려 죽을 뻔한 일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글을 모아 공모전과 출판사 문을 두들겼다. 결과는 참패. 어디 한 곳 내 글을 실어줄 곳이 나타나지 않았고 반복된 실패 앞에서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했다. ‘나는 소질이 있는 걸까? 괜히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택시 기사와의 일화를 담은 이야기를 한 편 읽어본 적 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청년 A와, 늦은 시간까지 영업 중인 택시 기사 사이에 이어지는 대화. A는 지금까지 공모전과 다양한 작품 활동에 도전했지만 반복될 실패 앞에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그날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하루를 끝내고 있는데, 택시 기사가 건넨 말이 인상 깊다. ‘사람은 나쁜 짓 빼고는 다 공부해야 해.'라는 말.

'공부, 공부라…….;

 지금껏 살면서 학교 시험공부 빼고는 해 본 적 없는데 이제는 무얼 해야 하나 싶었다. 택시 기사가 말한 공부, 바로 ‘인생 공부’였다. 글 쓰는 데 있어 인생 공부가 최고의 소제이고 주제가 된다. 실패를 딛고 이겨낸 성공 이야기, 감동을 주는 행복 이야기 등등. 문법이나 어휘력은 그다음이다. 공감 가는 글을 손으로 쓰기 위해 내 삶을 자꾸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만든다. 내가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는 발견과 기쁨은 그 후에 일이고.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공부했다.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는 없는가 하는 슬픔, 눈 내리는 겨울 얼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어묵 하나를 베어 물다가 안경에 서린 김에 한참을 웃었던 행복,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어렸을 적 아버지의 병상을 떠올렸던 추억까지. 공부가 반복될수록 글의 양은 늘어갔고 한 편의 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시간도 짧아졌다.

 완성된 나만의 이야기. 다른 책이나 소설, 일기에서 나올 법한 일을 가져다가 나만의 일상으로 바꿨다. 23년 새해에는 다짐하며 쓴 글이 있다. A4용지 두 쪽 분량의 수필을 50편 이상 완성하겠다는 목표였다. 이 글은 그중 열여덟 번째의 다짐이고 오늘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격려다.

 365일 모두를 완벽히 성공적인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그중 절반이라도 한 편의 글로 채우며 살고 싶다. 나만의 이야기로 채우는 삶. 앞으로도 실패를 반복했다고 해서 ‘나는 안 되는 건가 봐' 하는 결정보다 ‘계속해보자'라는 다짐과 결심으로 남은 일 년을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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