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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한우 May 19. 2017

일단 손님을 때려눕혀라

"접객接客"시리즈 세 번째  [쯔카다 농장 塚田農場] 1부    

두 달에 한번 정도 한국에 출장을 들어가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눈부시게 성장하는 것을 느끼는 분야가 바로 먹는【食】분야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 생기는 음식점 체인이나 유명 세프를 등장시킨 고급 다이닝까지 새로운 한류는 먹는 것에서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식재료, 그리고 인테리어와 맛으로 고객들에게 갖은 어필을 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일본은 예전부터 먹거리_ 구르메(gourmet의 일본식 발음)의 천국이었고 고객들을 사로잡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서로 피 튀기는 경쟁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도 가장 격전지는 바로 이자카야居酒屋_일본식 대중 술집이다. 


전메뉴 270엔 균일가를 선언하면서 이자카야전쟁의 서막을 알린 쯔키노시즈쿠月の雫와 킨노구라黄金の蔵



이 처절한 이자카야의 전쟁에서 접객을 중심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7년 만에 40배 성장한 회사가 있는데 바로 산지직송으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을 앞세운 쯔카다농장塚田農場이다. 


산지직송으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고? ㅎㅎㅎㅎㅎ


아니 도대체 지금이 1980년대도 아니고 이 새로울 것도 하나도 없고 남들 다하는 구태의연하기만 한 비지니스모델로 무슨 초고밀도 경쟁시장에서 40배나 성장을 한다는 거냐? 이래서 일본은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는 거 아니겠어?라고 말하면서 이 글을 닫는 분이 계시다면 아마 후회할지도 모른다. 


산지직송에 신선한 재료는 쯔카다농장이 내세우는 강점이긴 하지만 성공의 제1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촌스럽게 "농장"이름까지 달고 있는 이 구태의연한 캐치프레이즈의 술집이 성공한 요소들을 파헤쳐보자.

 


우린 손님들과 권투경기를 한다



여느 경쟁 이자카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쯔카다농장의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면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는 점원의 목소리가 다른 가게들보다 두세 배는 더 반갑게 느껴진다. 마치 어려워진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열사의 나라에 장기 파견을 나갔던 중동에 간 오빠가 돌아온 것처럼 나를 반겼던 한 점원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너무 반갑게 맞아 준 나머지 1초 정도 오해를 할 정도로 일단 손님의 마음을 흔들고 시작한다.


맞다. 인정한다. 어느 산업 분야나 나 같은 40대 아저씨들은 맛있게 물이 오른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오죽하면 일본 게임업계에서는 농담 삼아 유료화 성공의 지름길은 어저씨사냥おやじ狩り이라는 말을 하겠는가!! 넓은 이해를 부탁드린다.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 에너지들은 그저 목소리를 반갑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유니폼에서부터 "일"과 손님을 위한 "서비스"를 하겠다는 자세가 넘친다. 다른 이자카야와는 다르게 쯔카다농장은 유카타浴衣타스키襷를 두른 모습을 하고 있다. 유카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키모노着物와는 다르게 조금 더 얇고 홑겹이어서 여름 불꽃놀이 구경할 때 많이 입는 이른바 데이트 패션으로 까지 불리는 옷인데 "귀여움"을 배가시키는 여러 가지 장치를 많이 가지고 있는 옷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유카타는 소매가 넓고 펄럭거려서 일하는 데는 아주 불편해서 이자카야의 유니폼으로는 적절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타스키라고 하는 끈으로 소매를 단단하게 묶어 활동성을 극대화시키면서 점원의 매력을 배가시키고 밝고 에너제틱한 쯔카다농장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커다란 요소가 되고 있다. 


쯔카다농장의 유니폼. 아래쪽 여자점원들이 입은 옷이 유카타이고 어께와 팔을 단단히 감은 끈이 타스키이다. 


일단 첫인상에서부터 아주 좋은? 느낌을 받은 후, 자리에 안내받아 펼친 메뉴에서 본격적인 새로운 놀라움이 시작된다. 쯔카다농장에서는 메뉴를 그냥 메뉴라고 하지 않고 menu book이라고 한다. 그럴듯한 사진에 가격만 적혀 있는 게 아니다. 메뉴에 대한 사려 깊은 촘촘한 설명에 (예를 들면 이 메뉴는 콜라겐이 아주 많이 들어있어서 피부에 굉장히 좋습니다 라던지) 주재료를 어느 사람이 키웠는지, 어떤 정성을 기울여서 식탁까지 와 있는지 등, 앞서 산지직송 신선재료라는 구태의연하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제법 감성적으로 고객에게 어필한다. 음식을 고르면서도 잡지처럼 구성되어 있는 메뉴북을 보는 게 아니라 "읽게"되고 270엔을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다른 점포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비싼 가격들이 살짝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 정도까지 오면 일단 쯔카다농장의 전략에 절반은 말려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쯔카다농장의 메뉴북. 촘촘한 메뉴의 설명과 함께 산지에서의 모습을 담은 양파에 대한 설명이 보인다 (왼쪽 위)



일단, 메뉴북을 보고 맛있어 보이는 토종닭 숯불구이地鶏の炭火焼き를 주문했다. 쯔카다농장은 일본의 큐슈지방의 산지직송 메뉴를 제공하고 있는데 토종닭 숯불구이는 큐슈지방(특히 후쿠오카)의 잘 알려진 메뉴이기도 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객의 80%가 이 메뉴를 처음에 주문한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음식이 나오고 (숯불구이라 검정 숯이 닭구이에 묻어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참 맛있게 먹는데 부르지도 않은 점원이 스윽 뭘 들고 내 옆으로 온다. 


"손님. 이게 좀 매운맛을 내는 조미료인데요. 이 요리가 약간 기름져서 좀 느끼하게 느끼시는 분은 이 조미료를 치면 맛이 훨씬 좋아지는데 한번 쳐볼까요? 씨익. 이 조미료는 유자후추柚子胡椒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자알 생긴 청년이 다정하게 조미료를 화제로 나한테 말을 건다. 마침 약간 느끼함을 느꼈던 터라 한번 쳐 보라고 했더니 멋들어지게 조미료를 요리에 뿌리고 나서 한번 드셔 보라고 한다. 하.... 이게 2% 부족했던 맛을 채워준다고 할까? 토종닭의 쫄깃함에 유자후추의 약간 매운맛이 더해지니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진짜 맛있는데요? 감사합니다. 

내가 감사의 말을 전하는 순간, 슬쩍 다른 얘기를 던진다. 


점원: 혹시 저희 가게 처음이세요?

나: 네 처음이에요. 

점원: 아 그러면 주임이시네요. 짝짝짝 축하드려용 


이게 도대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심지어 난 사장인데?) 

한국에서는 아무나 보고 사장님이라고 불러대서 "대표님"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판인데 나보고 사장도 아니고 주임? 이라니. 


뜬금없는 소리와 함께 내 이름이나 별명이 뭔지 물어본다. 대답을 했더니 옆에 같이 서 있던(아까 나를 오빠처럼 맞아줬던 그) 여자 점원이 까르르 웃으며 뭘 써서 가져온다. 명함이다. 



쯔카다농장의 명함 포인트 카드. 주임에서 출발해 회장까지!!!! 



 쯔카다농장은 그 흔한 포인트카드가 없다. 대신에 자기들이 내 이름을 넣어서 맘대로 만든 명함이 있는데 주임부터 시작해서 오는 횟수에 따라서 명함이 계속 바뀌고 명함을 바꿔주면서 간단한 승진파티를 해준다. 승진파티의 내용은 모든 직급에 따라 다 다르고 승진할 때마다 서비스로 받는 내용도 다 달라서 회를 거듭할수록 그 즐거움이 배가된다. 계산을 해보면 그 가게를 36번을 오게 되면 비로소 모든 사람이 바라 마지않는 회장이 되는데 전국에 쯔카다농장 회장이 무려 70만 명이라는 소문이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고 싶은 회장님이란 말. 

36번 정도 오면 당연 점장부터 점원들이 단골이라 다 알게 되고 입구부터 어이구 회장님 오셨어요가 인사가 되는 가게. 장난스럽지만 기분이 나쁠 턱이 없고 이 정도면 요리가 맛이 없을 리가 없어진다. ㅎㅎ 


여기까지 와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한마디. 

혹시 뭔가 잊으신 거 있지 않으세요? 

맞다. 이 단락의 소제목이 "우린 손님들과 권투시합을 한다" 였잖어. 그런데 이 양반은 권투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하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계속 지껄이는 건가? 아까 그 권투 얘기는 뭐예요? 


몰랐나? 

당신과 나는 이미 쯔카다농장이 날린 잽을 서너 발 제대로 맞고 있다. 



잽 > 보디블로 > 스트레이트의 법칙  



10대 후반까지 프로복서를 꿈꾸었던, 쯔가다농장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에이피컴퍼니 오오쿠보 부사장은 쯔카다농장의 모든 서비스는 권투선수가 상대방을 다운시키기 위해서 밟는 3가지 프로세스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잽 > 보디블로 > 스트레이트 


1. 잽: 고객과의 거리를 잰다 

2. 보디블로: 고객과의 거리를 좁힌다 

3. 스트레이트: 고객의 감동을 만들어 낸다 


권투에서 잽을 날리는 것은 보디블로와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위해 자신의 팔 길이를 생각하면서 상대편과의 거리를 재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잽을 계속 맞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상당한 피로감이 생기면서 나중에 들어오는 보디블로의 파괴력을 높이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쯔카다농장에서의 잽은 고객과의 거리를 재기 위해서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름은 뭔지, 이 가게는 처음인지 등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반복적인 과정이다. 고객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객을 관찰하면서 계속 그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뜬금없이 시키지도 않은 조미료를 가져와서 뿌리거나 처음인지를 확인하며 명함에 이름(혹은 별명)을 적어서 주면서 이름(혹은 별명)으로 불러주질 않나, 주임으로 승진됐다고 박수를 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질 않나. 그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덧 이 가게의 "패밀리"로서 인정? 받게 되고 점원들이랑도 조금은 친하게 돼 버렸다. 다시 얘기한다. 요리가 맛이 없을 리가 없다. ㅎㅎ


이렇게 거듭되는 잽 공격으로 영문모를 혼미함이 계속되면서 아아 다 좋아 다 좋아 이 집 요리가 전부 너무 맛있다고 최면에 걸려 입으로 계속 옮기는 와중에 아까 주문했던 토종닭 숯불구이가 한두 조각 남아 점점 식어 비틀어져 갈 무렵, 상대편 선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우린 친한 사이니까 물어보지도 않고 한두 점 남은 숯불구이 철판을 쓱 가져간다. 

어? 그거 좀 남긴 했는데... 뭐... 식어서.... 어차피... 근데 너무 빨리 치우네? 라고 생각하고 나서 

조금 있다가 왔다 그 보디블로. 



식어버린 음식으로 다시 만든 예쁜 그림까지 들어있는 따뜻한 하트 볶음밥 


 

자 이 정도면 되면 쯘데레의 결정판이다. 무뚝뚝하게 가져간 남은 음식이 이렇게 따뜻한 하트로 돌아오는 순간  

예상치 못한 배려에 감동을 느끼지 않는 손님이 과연 있을까? 이런저런 서비스를 받을 거라고 예상하고 그전에 그런 서비스가 예상될 만한 가격을 지불하고 자 그럼 서비스를 한번 해봐라고 인상을 쓰고 있는 고객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작은 배려와 서비스를 받아서 행복해하고 있는 손님에게 이런 서프라이즈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넘는 "추억"수준의 감동을 남기게 된다. 정말 무서운 보디블로다. 


쯔카다농장에서는 말단 아르바이트까지 하나의 권한이 있다. 바로 원가 400엔까지 자유롭게 손님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는 권한이다. 다른 이자카야에서는 매출의 10% 정도를 포인트로 환원한다거나 할인을 한다거나 하는 마케팅을 많이 하지만 쯔카다에서는 그만큼을 점원의 재량으로 덤을 제공하는 마케팅을 한다. 이런 덤 메뉴는 위에서 얘기한 하트 볶음밥을 비롯 150가지가 넘고 전 점포의 인트라넷 게시판에 성공사례가 공유되서 퍼져나간다.


이렇게 손님이 슬슬 감동의 다운으로 가까워질 무렵 (세 번째 등장이다. 아까 나를 오빠처럼 맞아줬던 그) 여자 점원이 내 핸드폰 뒷면에 뭘 붙여달라고 활짝 웃으면서 부탁을 한다. 쯔카다농장의 귀여운 스티커이다. 일본처럼 사생활 보호가 철저한, 특히 사생활의 가장 최고 레벨이라고 하는 핸드폰이라는 소지품에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자기 회사 로고가 떡 박힌 겨우 원가 6엔짜리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한다. 쯔카다농장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펄쩍 뛸지도 모르겠지만 보디블로까지 맞고 있는 나로서는 무너져가는 나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허.락.할.께. 


쯔카다농장이 1호점으로 시작되고 나서 처음에는 1주일에 20장 정도 붙였던 이 스티커가 1년이 지나서는 5000장, 5년 만에 전점포에서 누계 300만 장이 붙여지는 믿을 수 없는 마케팅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6엔의 기적"이라는 말과 함께 쯔카다농장의 이름을 일본 전국에 알리는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느끼게 하면서 가게를 나갈 즈음에는 프라이빗한 부분까지 가게가 발을 딛으면서 당신의 공간에 "침범" 해도 되는 것을 "확인"하는 쯔카다농장. 스티커는 바로 보디블로에 이은 스트레이트인 것이다. 



쯔카다농장 스티커. 점포별로 다양한 모양의 스티커가 준비되어 있다.



이제 다운만 남았다. 아니다. 다운을 당하고 싶은 나만 남았다.


계산을 다 하고 잘 먹었습니다 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가게를 등지는 순간, 점장이 손에다가 뭘 쓱 쥐어준다.

 

나: 이게 뭐지? 

점장: 아까 숯불구이를 드실 때 너무 맛있게 찍어 드시는 걸 보고 좀 챙겨서 넣었어요. 유자된장이에요 ^^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의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좀 전에 맛있게 먹었던 된장을 조금 넣어서 건네받았다. 나는 아마 집에 가서 식구들에게 불쑥 건넬 것이다. 아까 저녁 먹었던 덴데 유자된장이 아주 맛있어. 조금 먹어볼까? 


쯔카다농장의 잽부터 맞을 사람이 몇 사람 더 늘어나는 순간이다. 



가게를 떠날때의 작은 선물



지금까지 쯔카다농장의 고객을 사로잡는 마케팅을 살펴보았다. 마케팅은 항상 비용이 들어간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은 이들의 노력은 전쟁으로까지 불리는 경쟁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살아남게 했다.쯔카다농장의 고객 재방문율은 다른 이자카야가 일반적으로 40% 정도인 것에 비해 평균 60%, 플래그쉽이라고 부를 수 있는 킨시쵸점은 80%를 넘는다고 한다. 시장 포화상태에서의 상황에서는 재방문율이 모든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가격을 낮춰서 매력도를 높인다는 전통적이지만 안일하기 짝이 없는 마케팅을 하고 있는 수많은 회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번 글은 쯔카다농장 1부이다. 

다음회에 발행할 2부에서는 이런 쯔카다농장의 점원들이 어떻게 그런 서비스가 가능하게 되었는지 아르바이트의 업무능력 향상까지 생각하는 이 회사의 임원들이 제시하는 경영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해답이 있다. 


> 댓글을 달아주신 분의 의견이 있어서 회장이 되기까지의 방문회수를 확인하여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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