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돕는다는 것이란?

by 리얼팔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보면, 오크들에게 포위되어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한 장면이 나옵니다. 여성과 아이들은 지하 통로로 피신해야 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죠. 모두가 절망에 빠져 구원군이 올 것이라 기대하지 않던 그때, 저 멀리 언덕 위에서 후광을 받으며 달려오는 기병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언덕 아래로 용맹하게 돌진하며 구원군이 나타났음을 알립니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절망 속에서 강력한 구원군이 당도했다는 사실에 큰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 같은 순간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힘든 일을 겪거나 체력이 완전히 소진될 정도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누군가 '짠'하고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어떨까요? 더욱이 그 도움이 아주 크고 확실한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 기쁨을 감출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것처럼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는 순간이죠. 이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돕는 사람의 마음

​그렇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요? '반지의 제왕' 속 구원병들은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큰 응원이 되었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이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대상이었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 왕이 주변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굳이 목숨을 걸고 도우러 갈 이유가 있었을까요?

​자신의 목숨과 큰 것을 걸고 도우러 갔던 그들의 마음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상대방이 자신들의 도움으로 인해 기뻐하고 큰 힘을 얻을 것을 기대하며 나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이미 큰 역경과 어려움을 겪어 체력이 모두 소진되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면 어땠을까요?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더라도 도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꺼이 돕는다는 것의 의미

​물론 전쟁터의 상황과 일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블로그 글을 쓰고 댓글도 달고, 운동까지 하느라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배가 고팠는데, 아내가 갑자기 30분가량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에 주문해 둔 단감을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두 박스나 된다고 하더군요.

​배고프고 힘든 상태였지만 아내를 돕는 일이라 생각하고 단감을 찾아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 박스는 우리가 먹을 것이고 나머지 한 박스는 장모님 댁에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보, 언니랑 형부랑 엄마집에서 집 정리하고 있는데, 장롱 같은 것을 부수고 해야 한다거든요. 좀 드와 드리고 오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를 짜증이 슬쩍 올라왔습니다. 힘들게 운동에 심부름에 아침도 못먹어 배도 고픈 상태로 단감 심부름까지 했는데, 이제는 장모님 댁에 가서 힘쓰는 일을 도와야 한다니, 이런 생각때문에 순간적으로 화가 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알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의 나의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 감정은 단순히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일까? 아니면 힘들고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나의 본성 때문일까?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왜 나만 힘들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만약 타인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어땠을까요? '내가 이 심부름을 함으로써 아내가 편해지겠지', '장모님 댁에 가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면 그분들이 큰 힘을 얻겠지'와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아침에 밥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하지 않고, 심부름으로 힘이 빠지기 전에 아내가 도움을 요청했다면 짜증이 났을까요? 아마 그 상황이 저의 진정한 본성을 보여주는 순간일 것입니다. 저는 남을 기꺼이 돕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까요?아니면 힘든 일을 피하려 하는 사람일까요?


​'반지의 제왕' 속 구원병들이 목숨을 걸고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지금 제가 장모님 댁에 '짠'하고 나타나 처형과 형님을 도와드린다면, 그분들 역시 구원군이 나타난 것처럼 기뻐하고 고마워 하실까요? 이제 확인하러 떠납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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