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순씨의 행복일기 #001

조직검사부터 진단까지

by 조이


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그날은 어쩐지 공기가 무거워 하루 종일 불을 끄고 원룸에 누워있었다. 어깨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여전히 욱신거렸고, 한동안 건강하게 유지해 오던 루틴을 당분간 지속하기 어렵겠단 생각에 조금 울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아빠한테 전화가 한 통이 왔다.


“엄마가 유방 조직 검사에서 이상한 게 발견됐어. 아무래도 암인 것 같다는데 큰 병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순간 방안의 어둠이 내 몸속까지 침범해 나를 무섭게 침잠시켰다. 짓누르는 어둠을 뒤로한 채,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강렬한 각성과 함께 일단 알겠다고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그 후 관계가 멀어졌거나 다소 소원해진 사이까지 포함해 내가 안다는 모든 의료계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사실 그래봤자 당장 할 수 있는 건 내놓으라 하는 유방암 명의들 리스트를 추리는 것뿐이었지만. 이렇듯 급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조직검사 결과지 없이 우리 가족은 외래 예약도 못하고, 병기에 따른 치료 방향도 결정할 수 없었다. 그저 유방암일 것 같다는 막연한 사실만 붙잡은 채 초반 며칠을 답답하고 지지부진하게만 흘려보냈다.


조직검사 결과지를 받고, 아빠와 나는 엄마가 집 근처 부산대나 백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유방암 치료는 이미 상당히 표준화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긴 항암치료와 수술과정을 엄마가 서울까지 통원하면서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외래 진료를 잡았고, 엄마 아빠는 10월 30일 외래 진료를 시발점으로 11월 13일 최종 유방초음파가 끝나기까지 꾸준히 병원을 오고 가며 초조한 마음으로 검사를 받았다. 당시 멀리 떨어져 있던 나도 매일이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는데, 둘이서 괜찮을 거라 믿으며 애써 손을 부여잡고 병원을 드나 다녔을 생각을 하니 아직도 마음이 저릿하다.


그렇게 11월 13일, 최종 진단일이 도래했다.

결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정적이었다. 분명 그전 병원 조직검사에서는 2cm 미만의 작은 종양 1개만 있다고 했고, 사이즈로 봐선 언뜻 수술로 깨끗이 제거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재검 결과 2.5cm, 3cm 종양이 두 개가 있었고 림프절도 약간 부어있어서 2기로 보인다고 했다. 다행히 타 장기나 뼈 전이가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엄마가 바로 수술하고 일상으로 쉽게 복귀할 거라 기대했던 우리 가족으로선 꽤나 충격적인 결과였다. 우리는 이제 피할 수 없이 암이라는 질병과 1년 동안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것이었다.


엄마가 회사에 있는 나에게 전화해 처음 이 소식을 알렸을 때 왜 나는 순간 엄마가 나 때문에 짜글짜글 속 끓이고 산 세월만 생각났을까? 엄마 마음이 마치 짜글이처럼 쪼그라들어 암으로 깊숙이 박혀버린 것만 같았다.


“내가 엄마 속 썩여서 이렇게 된 거 같아. 다 나 때문이야”

“아니야 딸,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마”


엄마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연신 울먹이더니 이내 수화기 너머로 사라졌다. 대신 전화기를 건네받은 아빠는 앞으로의 치료 일정과 그 주 토요일에 삼일 간 입원하고 첫 항암치료가 진행될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길로 주저 없이 회사에 다음 주 이틀 연차를 올렸다.


근데 이상하게 그때까지도 난 그렇게 눈물이 나진 않았다. 아직 아픈 엄마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감이 안 났던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난 멍하게 '이제 자주 연차를 써야 할 것 같은데 회사에는 뭐라고 하지'와 같은 지극히 쓸모없는 현실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 후, 입원한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