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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ug 04.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13화

실화 소설

  심해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 날이 이틀째 이어졌다.


  “하, 양 씨? 오늘은 좀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불편한 곳은 없나요?”


  “네.”


  “양호합니다.”






  한숨이 트인 금희는 배선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배선실은 보호자와 간병인을 위한 공간으로, 111병동으로 들어가는 유리문의 바깥쪽에 있었다.


  전기 설비를 관리하는 곳이라는 뜻의 ‘배선실’이라는 이름이 어째서 이곳에 붙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기에는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 작은 개수대와 1인용 샤워실이 있었다. 배선실은 한 달에 만 원을 내야 이용할 수 있는데, 보호자 중에서 총무를 뽑아 돈을 관리했다. 총무는 주로 커피와 쌀 등 공동 먹을거리를 구입하는 역할을 맡았다.


  금희는 격리 병동에 들어오면서부터 배선실에 나오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처음에는 곧 양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가리라 생각해서, 그 뒤에는 잠시라 해도 양의 옆을 비울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거절하던 금희였다.


  그러다 2주가 지났다. 1박 2일로 예상했던 금희의 서울 방문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원 생활로 바뀐 지 오래였다. 이제는 금희도 보호자들의 세계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금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분노가 2호 지혼자를 들쑤셨다.


  아무렴. 더 이상은 못 참아! 대한대병원의 후원자야, 내가. 더군다나 이 혈액종양내과에서 제일 유명한 교수인 반대로가 내 아들의 친구고.


  그런데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주치의가 자신보다 3호를 더 챙기고 있었다.


  게다가 3호는 분명히 백혈병 말기로 판정을 받았는데, 상태는 자신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 혼자는 자신을 돌봐 주는 동생에게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지만,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커튼 너머의 양에게 잘 들리도록.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이 병으로 치료를 받은 지가 6년째 아닌가. 하도 병원을 들락거리다 보니 이제는 내가 반은 의사야. 내 병에 대해서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이 어디 있나? 없지. 인턴이나 레지던트, 모자란 의사들이 하는 실수까지 다 알아서 틀렸다고 가르쳐 줘, 내가. 지금 옆에서 아픈 곳이 줄어든다고 좋아하는데, 그거 다 몰라서 신나하지, 실은 나쁜 표시인 줄 모르고, 쯧쯧.”


  “그렇수?”


  “아무렴! 항암제가 몸을 돌면서 암세포를 몰아내려고 싸우면서 일어나는 게 부작용이야. 아픈 곳곳이 실은 암세포와 약이 싸우는 전쟁터인 셈이지. 하이고, 그런데 전쟁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겠나? 치료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뜻이야. 그걸 모르고 저렇게 좋아하니, 쯧쯧.”


  “역시! 우리 언니는 의사셔, 의사!”


  이 부분에서 혼자는 갑자기 목소리에 무게를 실었다.


  “두고 보게. 3호가 우리 병실에서 제일 위험한 중환자야.”


  이때 양은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가 자리를 비워서 다행이야. 좋은 말도 아닌데 들으면 괜히 마음만 안 좋지. 양은 이 일을 금희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싸움으로 번질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컸다.


  지난주부터 탐탁지 않은 물건들이 2호에서 넘어오고 있었다. 혼자가 코를 푼 휴지 뭉치나 치즈를 싸고 있던 비닐 같은 쓰레기였다.


  침대 바로 아래에 개인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혼자는 아무렇게나 바닥으로, 옆으로 휙휙 내던졌다. 병실을 청소하는 직원들이 혼자를 대놓고 싫어하는 이유였다.


  처음에 쓰레기는 금희의 침대 아래로 굴러들어왔다. 혼자의 침대와 커튼을 사이에 두고 그보다 50cm 정도 낮은 곳에 금희의 보호자 침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 먹은 약봉지 같은 것을 발견해 건넨 적도 벌써 여러 번이었다.


  “하이고!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처음에는 그래도 미안한 투의 대답이 돌아왔기에, 금희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삼 일에 한 번이던 실수가 며칠 전부터는 하루에도 몇 차례로 잦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오후에는 보호자 침대에 누운 금희의 머리 위로 꾀죄죄하게 얼룩진 혼자의 메밀 베개가 떨어지기까지 한 상태였다.


  과연 정말 실수인가.


  금희의 의심은 짜증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혼자는 늘 머리 쪽 침대 난간에 불안하게 기대앉아 금희의 신경을 긁었다. 힘도 없는 노인이 얇은 커튼을 사이에 두고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굴러떨어질 듯 앉았으니 금희의 곤두선 신경은 당연했다. 그러니 쓸데없는 말은 양이 알아서 안 옮기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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