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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ug 06.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14화

실화 소설

  하필이면 이날 오후, 양의 혈액 검사 결과가 안 좋았다.


  핏기를 잃은 입술이 아침부터 위험성을 알렸듯, 빈혈 수치는 8 밑으로 떨어진 7.8을 기록했다. 혼자의 말이 귀를 맴돌며 양의 불안감을 키웠다.


  그런데다 이날따라 오후 4시가 넘도록 양이 맞을 피가 안 왔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의 수혈은 다 끝나가고 있었다. 그제야 한숨 간호사가 오더니 뒤늦은 설명을 했다.


  “후. AB형 혈액이 부족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오는 대로 줄게요.”


  힘들다고 헉헉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한숨 간호사의 옆으로 원석이 들어와 손을 흔들었다.


  “간호사한테 들었죠?”


  “네.”


  “하양 씨, 불안해하지 말아요. 가끔 헌혈된 혈액이 부족해서 늦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아… 대학로를 지나다 보면 AB형 혈액 구함! 같은 푯말을 든 사람이 헌혈 카페 앞에 서 있곤 하던데, 누군가 저 같은 경우였나 봐요. 이런 줄 알았으면 주삿바늘이 아무리 무서워도 건강할 때 헌혈을 많이 할 걸 그랬어요.”


  “겪어 봐야 아는 일이 있는 겁니다, 누구나 그래요. 너무 걱정 말아요. 여차하면 내 피를 줄 겁니다.”


  “네? 선생님, 말씀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만이 아닙니다! AB형에 RH+. 혈액형도 저랑 같더군요. 기다릴 필요 없이 내가 지금 당장 뽑겠다고 팔을 걷었더니 간호사들이 단체로 말리는 겁니다. 내 이상한 성격을 옮긴다면서. 그래서 정말, 겨우! 참았습니다!”


  “아하!”


  “그 ‘아하’는 무슨 뜻이죠? 아, 이런! 설마 하양 씨가 보기에도, 내가 정말로 사차원이라는 겁니까?”


  “조금은요? 하하. 여차해도, 선생님이 계시니까 든든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이요. 아, 그런데요, 선생님.”


  “말씀하세요.”


  “구토나 부스럼이나… 저처럼 항암제로 인한 부작용이 적으면, 치료가 잘 안 되고 있는 건가요?”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양은 말없이 2호 쪽 커튼을 가리켰다.


  “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항암제가 나쁜 암세포를 죽이면 몸이 나아지는 게 정상입니다. 구토나 신장 독성과 같은 부작용이란 게 뭡니까? 그야말로 부수적으로, 없으면 더 좋은데 일어나는 작용이에요. 항암제의 원래 역할은 암세포를 죽이는 겁니다. 모든 약은 제 역할만 하고 몸 밖으로 나오는 게 가장 좋아요. 그런데 그 약이 제 할 일을 넘어서서 정상적인 장기를 공격하거나 있어야 하는 유익한 세균 같은 것들까지 죽여서 생기는 게 부작용이에요. 부작용은 하양 씨처럼 적을수록 좋은 겁니다. 밥을 잘 먹고 화장실에 잘 가니까 항암제가 제 역할만 하고 밖으로 빠져 나오는 겁니다.”


  “정말요?”


  “그럼요. 부작용이 커야 치료가 잘 된다! 아플수록 잘 낫는다! 가끔 그런 오해를 하는 환자 분들이 있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부작용은 적을수록 좋고, 아프다고 해서 치료가 잘 되는 게 아니에요. 부작용이 적어도 치료가 잘 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커서 그것 때문에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암 치료 과정에서 병의 악화만큼이나 부작용으로 인한 각종 합병증 때문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앞으로 어디서 무슨 말을 듣든 반드시 의사인 제게 확인하세요. 알겠죠?”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원석이 올 때마다 불러 대던 2호가 이번에는 조용했다.


  다행히 혈액이 곧 도착했고, 양은 무사히 수혈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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