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의 미학

버려야만 채울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

by Rebuild HW

철거는 언제나 묘한 감정을 준다. 벽지를 뜯고, 오래된 가구를 들어내고, 낡은 마루를 걷어낼 때면 왠지 모르게 아쉽고, 동시에 속이 후련하다. 그 공간을 살아온 시간과 기억이 함께 떨어져 나가지만, 비워진 자리에는 새로운 숨결이 들어올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현장에서 철거를 볼 때마다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붙잡고 있던 미련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버리지 못한 짐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 듯, 낡은 마감재는 집을 답답하게 만든다. 철거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폐기물이 제대로 분리되고 있는지, 구조체는 손상되지 않았는지, 다음 공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 현장에 나가 먼지를 뒤집어쓰며 서 있으면, “왜 대표가 이런 데까지 신경 쓰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내겐 당연한 일이다. 내가 책임지는 집이니, 끝까지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철거 과정에서 늘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다. 마루를 다 걷어낸 뒤 드러난 바닥의 거친 콘크리트, 벽지를 모두 뜯고 나니 나타나는 오래된 시멘트 벽. 그 순간만큼은 집이 벌거벗은 듯 솔직하다. 화려한 장식이나 도배가 가려주던 흔적들이 모두 드러나고, 본래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나는 그 풍경을 볼 때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고 느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에는 금이 가 있거나 오래된 흔적이 숨어 있다. 그것을 드러내야 비로소 새롭게 고칠 수 있다.


철거는 힘든 과정이다. 먼지와 소음, 폐기물 처리까지 모두 만만치 않다. 작은 실수 하나로 다음 공정이 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철거를 거치지 않고는 새 출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철거를 ‘미학’이라고 부른다. 무너뜨리는 과정 속에서도 분명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철거 현장에 서 있으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더 버려야 할까?” 집의 낡은 자국처럼, 내 안에도 지워야 할 흔적이 있지 않을까. 철거를 지켜보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집을 비우듯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도 도면 위에서 그리던 선이 철거 현장에서 첫걸음을 뗀다. 종이 위의 선은 무너진 벽 위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먼지를 뒤집어쓴 공간은 곧 새 옷을 입을 준비를 한다. 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버려야만 채울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현장은 늘 내게 다시 가르쳐 준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