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를 알아가려는 노력에 내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나를 보며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게 '나'라는 개인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자료조사를 통해 얻은 정보로 합당한 주장을 글로 옮긴 들,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는다면 그간 의료문제에 대해 알아보고 이야기했던 시간들은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나이 30.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불안정한 인생을 살아왔고, 그 과정 속에서 몇 번이고 넘어지며 좌절했지만, 결국 스스로 일어서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기대를 걸게 되었다. 현재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시간의 촉박함과 '선택과 집중'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IT 개발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들며 공부하고 싶고, 드론 촬영기술도 배우고 싶고, 각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지식의 폭을 넓히고 싶고,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서 연애와 사랑도 깊이 있게 해보고 싶다.
30대 되고 나서야, "시간은 금세 흐른다"라고 느낀다.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기에 사회문제에 시간을 갈아 넣는 것이 나에게 이득을 다가오는 것인가.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문제에 침묵하며' 내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그리고 다른 것에 덜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면서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빠른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사회인으로서 책임의식을 느낀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하면서 느낀 것은 아래와 같다.
"사회문제의 극다수는 '소수가 겪는 문제로 방관되고' 모른척하도록 학습되면서, 우물은 고이고 썩는다."
나는 중산층에서 태어났고 가정의 울타리에서 지속적인 서포트를 받아왔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부모님은 안정 속에서 자녀들이 인생을 살길 바란다.'는 것을 느꼈다.
그에 아무런 대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격함 속에서 통제받으며 다른 이의 선택에 의존해 왔고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스스로 무엇을 굳이 하러 나설 필요가 없는 포근함 속에서 지내왔지만, 이제는 그 새장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뒤늦게 갈등을 빚으며 대들고 충돌하며 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
'새장 밖'은 알지 모를 세상으로 가득하다. 부모님은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더 넓은 새장' 속에서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짝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듯하다.
'날갯짓을 하지 않는 새'는 그 정체성을 잃어가는 법이다. '어느 정도 높이로 날아오를 수 있을지, 그로 인해 넓은 세상을 보게 될지'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새장 밖을 나와서, 날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일이지만, 한 사람을 깊게 사랑한 적이 있었다. 비록 짝사랑이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를 지나오며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사랑' 그리고 '그 이별'은 자신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정신적 고통으로 다가오기 쉽다는 것을.
그 '아픔'이 두려웠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며 합리화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밀어내고 거부하며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왔다.
그리고 오늘, SNS에서 이루어진 일이지만 그 수많은 글 속에서 '길게 쓴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고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들며, 진솔한 말을 나에게 와닿게 하는 유저를 만났다. 그로 인해, 익숙지는 않지만 마음속 어디선가 그립게 생각했던 '그 감정'을 느꼈다. '상냥함, 포근함' 그를 나타내는 이름은 '사랑'
지난 15년 동안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하며사랑을 거부해 왔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그간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주고 싶어 했구나.그러면서도 '이별'이라는 이름의 통과의례를 겪는 것을 회피하며,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하는 나를 외면해 왔구나"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