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게 느껴 온 것, 그를 내려놓지 않으며 잊어온 자신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신뢰를 쌓는 그 과정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길게 보며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만한 여유를 찾기가 어렵다.
나는 20대 때, 외부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만남을 회피해 왔고, 그렇게 홀로 하는 활동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그 세월을 당연하게 여긴 행동의 책임"을 지금 지고 있다.
만남이란, "서로 결핍된 부분을 메꾸기 위해, 상호 간 암묵적으로 합의된 결과가 행위로 드러난 것"임을 당시 나는 의식하지 못했다. 진작에 20대 때 많이 해봤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미루다 보면 결국은 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을 그간 경험했다. 30대 때마저도 이를 등한시하면 40대가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다.
조금은 이 무게를 내려놓고 싶다. 그럼에도 그 부담을 조금도 덜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 참 답답하게 느낀다. 그러한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홀로 많은 것을 끌어안으려고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고 소신을 지키겠다는 마음가짐 속에서 '나 자신이 빠진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멀리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은 내 인생관이었고 계속 지니고 있던 결심이었다. 내게 있어서 '선한 사람'이란: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끊임없이 찾아보려는 '정직'을 기본으로 갖춘 이"였다. 그러한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살아오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도 때려치우는 경우가 많았고, 뻔뻔한 선택을 멀리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이타적인 인생을 살아왔다.
갈등에 있어서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화나 행동에 있어서, 다른 누구도 상처를 입히기 싫다면 결국 그 모든 상처는 자신이 입고 짊어져야 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느 한쪽은 뻔뻔한 사람이 되었고 다른 한쪽은 자신을 탓하는 쪽으로 변했다는 것을 가족이라는 사회의 한 형태에서 직접 체감한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내 인생을 살아왔고, "결국 그로 인한 상처는 내가 다 뒤집어쓰려고 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나의 선택이 계속된다면,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뻔뻔해지는 것은 아닐까?"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한정된 이해관계를 조금이라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려는 "뻔뻔함"을 '국민연금 개혁안'을 통해서 지켜봤고 '나는 저러한 인식 속에서 늙지는 않을 거야'라며, 애써 거부하려고 들어왔지만 '이렇게 모든 상처를 자신이 뒤집어 안고 살다가는, 불만족스러운 자신 속에서 뻔뻔함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은 다음 세대에게 미움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임'을 떠올리며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늙어서 뻔뻔하게 살바에는 "자신중심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이가 들어서 후대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말년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라며 지금까지 있었던 나의 선택에 회의감을 느낀다.
어릴 적 그리고 30대 청년 되기까지 "저 구름에 걸려있는 무지개 위를 내 다리로 직접 걸어 보겠다는" 완전한 이상을 추구해 온 것은 아닐까...
과거 다른 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밖으로 나가는 것을 회피했다. 더한 놈들도 여기저기 설치고 다닌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완벽한 자신'을 꿈꿨고, 내 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성장해야 한다는 결심"은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꿈과 이상을 내려놓지 못했던 내게 이 인생은, 달리 활용할 가치가 있는 걸까. 오늘 밤은 유독 차갑게 느껴진다.
https://v.daum.net/v/20240424004033308
https://v.daum.net/v/2024042107570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