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1년 동안 시간이 멈춘 듯했다.
오늘은 수능이잖아, 수능에 대한 글을 써 보는 건 어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걸 알고 나서 주변에서는 열심히 소재를 물어다 주었다. 오늘은 수능이었다. 그렇지만 브런치의 다른 사람들도 수능에 대한 글을 쓰자는 생각을 할 것은 뻔했다. 그래서 수능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고 싶었다. 수능을 세 번 치렀지만 그런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다른 걸 써야지 하다가 생각난 것이 기숙사 재수학원에 대한 것이다.
기숙사형 기숙학원은 많은 것이 일반 재수학원과 다르다. 일반 재수학원의 경우에는 점심-저녁을 지원하며 공부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기숙사형 재수학원은 아예 거기서 산다.
하루 일정은 이렇다. 아침 6시에 기숙사에서 일어나서 아침 체조를 하고 7시에 밥을 먹는다. 학생들 중 대부분은 밥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어서 죽을 따로 배식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8시부터는 강의동으로 내려온다. 오전 시간은 강의 시간이다. 강의를 듣고 나면 저녁 11시까지 자습실에서 자습을 한다. 사이사이마다 점심과 저녁과 간식을 먹는다. 그리고 모두가 공용 샤워실에서 씻고 12시에 잠에 든다.
장소도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에 위치해 있어 함부로 바깥에 나갈 수 없다. (아픈 학생들에 한해 학원 내부에서 봉고차로 병원 셔틀을 해 준다.) 가지고 갈 수 있는 물건들도 제한된다. 화장품이나 전자기기는 전면 사용이 금지되며 심지어 외간 음식들도 불심검문을 해서 싹 압수한다. 옷도 지급해 준 편한 청색 츄리닝을 입는다. 군대와 다를 게 없어. 아니 군대보다 더 심해. 같이 공부를 하던 오빠 중 한 명은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군대와 같이 각 학생들은 랜덤으로 배정되어 기숙사 생활을 했다. 내무반과 똑같았다.
처음에 학원에 들어갔을 때 기상나팔 소리로 SG워너비의 <아리랑>을 틀어주었다. 처음에는 기상나팔 소리를 가요로 하다니 센스 있네 생각했지만 수능을 볼 때쯤엔 그게 지겨워져 그들의 소몰이 창법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SG워너비의 노래를 듣지 않는다.
십 수년이 지나 지금 기억나는 건 그때 배웠던 선사시대 돌널무덤, 껴묻거리와 미분 적분 같은 것이 아니다. 추억이다. 막 성인이 된 외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다 보면 온갖 치정사가 생긴다. 그중 같은 반 친구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타입이었는데 온갖 종이로 된 쪽지를 받았다. 문자가 없고, 핸드폰이 없는 공간에서 연애에 목마른 청춘들은 자습실에서 열심히 절절하게 자신의 사연들을 쪽지로 전하고 날랐다. 그러면 복도 한 복판에서 네가 네 남자친구에게 꼬리를 쳤다느니 하는 싸움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웃긴 것은 그렇게 지지고 볶고 세기의 사랑을 하던 친구들이 학원을 졸업하고 각자 대학에 가자마자 모두 깨졌다는 것이다.
그런 곳에 있으면 서로에게 적대적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었다. 우리는 지나치게 외로웠고 외로운 친구들끼리 서로 이해하는 것이 있었다. 몇 달을 공부에만 매진한 우리는 모두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공용 냉장고에는 부모 편에 보내준 보약들이 학생들의 이름들을 붙이고 가득 쟁여져 있었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었다. 추석이 되고 설날이 되면 학생들은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학생들을 반대했다. 명절은 언제나 있는 건데 공부가 급하지 않느냐며 거절했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복도 구석에서 우는 학생들이 많았다.
우리는 우리만의 한가위를 만들면 되지.
학생 중 누군가의 제안으로 모두 펜을 놓았다. 어차피 공부가 되지 않았다. 달이 밝았고, 우리는 모두 운동장으로 나왔다. 걸상과 책상을 교실에서 가지고 나와 앉아 학생들은 달구경을 했다. 달이 참 예뻐요.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처럼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꼭 연애담이 아니더라도 거기서 흐르고 있는 것은 약간의 전우애에 비슷한 것이었다. 수능이라는 거대한 적에서 우리가 꼭 적이 될 필요는 없었다. 시험장에서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기 전까지, 우리는 친구였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