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아니다, 적응이다.
저는 지금 스물한 살이고요, 누나는 스물다섯이에요. 이제 내년에 스물여섯이 되는데요.
누나는 사이코 패스라는 단어가 사회에 떠돌기 훨씬 전부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증상은 비슷했다고 해요. 누나가 어릴 때 뭔가 이상하네, 이상하네 하다가
집에 키우던 새를 꺼내 죽인 걸 보시고 부모님이 데려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고 해요.
저도 조금 크고 나서 막 가서 덩달아 검사받고 그랬는데; 부모님이 저도 그런지 아닌지
확인하시려고;; 다행히 전 아니었고요;;
사이코패스는 치료로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안타깝게도요.
누나가 받는 치료는 공격성을 억제시키는 정신치료와 , 사회 적응을 위한 적응훈련 같은 것들이고요.
누나는 어느 정도의 공격성과 행동이 사회에서 용인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걸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선을 그어주는 작업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치료들에 가족들 힘이 굉장히 필요해요.
참고로 누나는 공부 굉장히 잘했어요. 초중학교 때는 공부 그렇게 잘하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좀 치료받고 행동이 안정선 안에 들어가고 나서는 성적이 급 미친 듯이 올라서;;
수능도 진짜 잘 봤고.. 지금은 학교 굉장히 좋은 데 다니고 있고.. 중간에 한번 휴학해서 인제
마지막 학기고요, 장학금 엄청나게 받았어요. 대학교 성적은 정말 최고였어요.
친구 적고 남자친구 없었던 것 빼고는 겉으로 보면 모를 정도로 적응 잘하고 있어요.
공격성을 억제하는 작업은 여러 가지로 이루어졌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집에 햄스터 같은 것도 키웠고요. 그걸 키우면서 일지를 계속 쓰는데,
쓰고 싶은걸 다 쓰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누나는 먹은 사료의 양이라던지, 물의 양 이런 수치를
굉장히 자세하게 적고 그랬어요. '귀엽다 예쁘다' 이런 말은 없고요.
근데 중요한 게, "이거 귀엽지 않아? 이쁘지 않아?" 이런 걸 강요하는 말을 하시면 안 돼요.
훈련도 힘든데 정말 더 힘들어하거든요. 그런 건 건드리면 안 돼요.
그걸 죽이지 않고 계속 키우면서 죽이지 않고 잘 다뤄준다는 걸 꾸준히 반사적으로 몸에 익히는 거죠.
가족분이 안타까운 마음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도와주시려고 하시다가, 오빠분을 훨씬 더 악화시킬 수도 있어요.
치료할 때는 가족들도 교육을 정말 엄청나게 받거든요. 저야 처음에 나이도 어렸고 동생이니까
대처 방법이나 이런 것만 조금 배우고, 나중에 더 배우고 그랬지만 처음에 부모님이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누나를 돌보셨어요. 특히 사회 적응 프로그램 할 때요.
치료 중에 , 집에서 대화하는 시간도 있는데,
대화 시간을 잡아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야 그냥 수다지만 누나에게는 이것도 굉장히 힘든
훈련이고 자기를 참아야 하는 시간이고, 적응해야 하는 고된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때 해야 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될 이야기 같은 게 있어요. 그걸 가족들도 다 교육받으셔야
되고요, 병원 가면 책자 같은 거 주고 그래요. 그럼 그거 외우고.
위에서 제가 행동에 선을 긋는 작업이 있다고 했죠?
신문이나 뉴스 같은 걸 보면서 그런 걸 정리를 해요. 이게 사회적으로 왜 용인되지 않는 행동인지.
다시 말하지만 누나는 그걸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니까요.
예를 들면, 예전에 햄스터를 믹서기에 갈아서 인터넷에서 난리난 적 있었잖아요.
그걸 누나랑 봤었는데, 예를 들어서 누나가 그걸 정리하다가'왜 햄스터를 죽이면 안 돼?'라고 물어봤을 때
"불쌍하잖아!"라고 대답하는 게 최악의 대처 방법이에요. 절대 저렇게 대답해 주면 안 돼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도 없는데 동물을 그냥 죽이고 그러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면
'먹으려고 동물을 죽일 때는 법에 정해진 도축 방법이 있는데, 거기서 벗어나서 죽이거나 하는 걸 싫어한다'
라고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해 줘야 해요. 잘 이해 안 되시죠. 근데 그렇게 해줘야 누나가 이해하고,
(알아듣는다가 아니고 수긍한다는 뜻이에요) 앞으로 하면 안 될 행동에 그걸 플러스시키는 거죠.
어떻게 대답해줘야 하는지 그런 것 가서 본인도 배우셔야 되고요... 쉽지 않아요.
우리야 당연히 그 햄스터를 먹으려고, 혹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거기에 경악하는 거지만 누나는 그 모든 이해에 단계가 필요해요.
그런 사람에게 대뜸 "누나 미쳤어? 먹으려고 그랬겠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누나가 지금 굉장히 안정되어 있지만, 사실 십 년 넘게 치료받으면서 아무 일도 없지는 않았어요.
누나의 치료가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인데도요.. 저도 솔직히 가끔 누나랑 이야기하고 할 때
누나가 무서울 때가 있지만.. 누나가 하는 모든 억제된 행동과 좋은 결과가 누나 속으로 얼마나
힘들고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이루어지는 건지도 이해해야 해요. 우리에겐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여도요.
가장 중요한 건, 사이코패스도 기본적으로는 장애라는 걸 이해해주셔야 해요.
아까 쓴 거에서 빠진 게 이것저것 있는데 뭘 빠트렸는지 잘 생각이 안 나네요 ㅠ
여하튼 오빠분의 공격성이 이미 도를 넘었고, 동물을 자르거나 학대하고, 죽이는 단계에 갔다면
병원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고요. 오빠분만 병원에 밀어 넣으시면 되는 게 아니라
가족분들 협조가 진짜 많이 필요하고요, 동생분도 동생분이지만 제 생각에는
부모님이 제일 많이 힘드실 거예요.
동생분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부모님을 설득시켜서 치료를 받게 하시고,
오빠를 무서워한다는 느낌을 오빠에게 주지 마세요. 이것도 병원에서 가르쳐줄 거예요.
잘 치료되시길 바랄게요.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리플 달고 하세요.
최대한 가르쳐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