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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Nov 20. 2023

중증 정신장애인이 살아가는 법

치료가 아니다, 적응이다.

우리 집 아래층에는 자폐증 환자가 산다. 방에 누워있으면 그가 소리를 지르며 쿵쿵 벽을 치는 소리를 가끔씩 들을 수 있다. 그러면 때로 그의 아버지라 짐작하는 인물이 고함을 지르며 그를 중재시킨다. 아랫집엔 자폐증, 윗 집에는 조현/조울증 환자라니 좋은 조합이군. 나는 서로 인생 힘든 처지에 그가 조금 시끄럽게 한다고 민원을 넣거나 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그냥 가만히 살고 있다. 목소리가 우렁찬 날이면 음 오늘은 건강하시군 생각하면서.


네이트 판에 '사이코 패스의 누나'라는 제목인 글이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보다는 전사의 뇌라는 표현이 더 pc하지만 부득이하게 이 글에서는 사이코패스라고 적어둠을 알려 둔다) 어렸을 적 사이코패스라고 진단받은 누나가 세상을 살기 위해 재활 치료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그 글은 많은 비 정신 장애인들에게 '무섭다' 혹은 '저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댓글이 달렸다. 그 글의 요지는 사이코패스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코패스인 성향을 가지고도 사회에서 기능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왜 동물을 함부로 죽이면 안 돼? 같은 질문에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어? 같은 대답은 금물이다. 사회에는 동물을 도축하는 방식이 있고 그 지점을 벗어나면 화를 낸다.로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저는 지금 스물한 살이고요, 누나는 스물다섯이에요. 이제 내년에 스물여섯이 되는데요.

누나는 사이코 패스라는 단어가 사회에 떠돌기 훨씬 전부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증상은 비슷했다고 해요. 누나가 어릴 때 뭔가 이상하네, 이상하네 하다가

집에 키우던 새를 꺼내 죽인 걸 보시고 부모님이 데려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고 해요.

저도 조금 크고 나서 막 가서 덩달아 검사받고 그랬는데; 부모님이 저도 그런지 아닌지

확인하시려고;; 다행히 전 아니었고요;;

사이코패스는 치료로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안타깝게도요.

누나가 받는 치료는 공격성을 억제시키는 정신치료와 , 사회 적응을 위한 적응훈련 같은 것들이고요.

누나는 어느 정도의 공격성과 행동이 사회에서 용인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걸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선을 그어주는 작업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치료들에 가족들 힘이 굉장히 필요해요.

참고로 누나는 공부 굉장히 잘했어요. 초중학교 때는 공부 그렇게 잘하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좀 치료받고 행동이 안정선 안에 들어가고 나서는 성적이 급 미친 듯이 올라서;;

수능도 진짜 잘 봤고.. 지금은 학교 굉장히 좋은 데 다니고 있고.. 중간에 한번 휴학해서 인제

마지막 학기고요, 장학금 엄청나게 받았어요. 대학교 성적은 정말 최고였어요.

친구 적고 남자친구 없었던 것 빼고는 겉으로 보면 모를 정도로 적응 잘하고 있어요.

공격성을 억제하는 작업은 여러 가지로 이루어졌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집에 햄스터 같은 것도 키웠고요. 그걸 키우면서 일지를 계속 쓰는데,

쓰고 싶은걸 다 쓰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누나는 먹은 사료의 양이라던지, 물의 양 이런 수치를

굉장히 자세하게 적고 그랬어요. '귀엽다 예쁘다' 이런 말은 없고요.

근데 중요한 게, "이거 귀엽지 않아? 이쁘지 않아?" 이런 걸 강요하는 말을 하시면 안 돼요.

훈련도 힘든데 정말 더 힘들어하거든요. 그런 건 건드리면 안 돼요.

그걸 죽이지 않고 계속 키우면서 죽이지 않고 잘 다뤄준다는 걸 꾸준히 반사적으로 몸에 익히는 거죠.

가족분이 안타까운 마음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도와주시려고 하시다가, 오빠분을 훨씬 더 악화시킬 수도 있어요.

치료할 때는 가족들도 교육을 정말 엄청나게 받거든요. 저야 처음에 나이도 어렸고 동생이니까

대처 방법이나 이런 것만 조금 배우고, 나중에 더 배우고 그랬지만 처음에 부모님이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누나를 돌보셨어요. 특히 사회 적응 프로그램 할 때요.

치료 중에 , 집에서 대화하는 시간도 있는데,

대화 시간을 잡아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야 그냥 수다지만 누나에게는 이것도 굉장히 힘든

훈련이고 자기를 참아야 하는 시간이고, 적응해야 하는 고된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때 해야 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될 이야기 같은 게 있어요. 그걸 가족들도 다 교육받으셔야

되고요, 병원 가면 책자 같은 거 주고 그래요. 그럼 그거 외우고.

위에서 제가 행동에 선을 긋는 작업이 있다고 했죠?

신문이나 뉴스 같은 걸 보면서 그런 걸 정리를 해요. 이게 사회적으로 왜 용인되지 않는 행동인지.

다시 말하지만 누나는 그걸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니까요.

예를 들면, 예전에 햄스터를 믹서기에 갈아서 인터넷에서 난리난 적 있었잖아요.

그걸 누나랑 봤었는데, 예를 들어서 누나가 그걸 정리하다가'왜 햄스터를 죽이면 안 돼?'라고 물어봤을 때

"불쌍하잖아!"라고 대답하는 게 최악의 대처 방법이에요. 절대 저렇게 대답해 주면 안 돼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도 없는데 동물을 그냥 죽이고 그러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면

'먹으려고 동물을 죽일 때는 법에 정해진 도축 방법이 있는데, 거기서 벗어나서 죽이거나 하는 걸 싫어한다'

라고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해 줘야 해요. 잘 이해 안 되시죠. 근데 그렇게 해줘야 누나가 이해하고,

(알아듣는다가 아니고 수긍한다는 뜻이에요) 앞으로 하면 안 될 행동에 그걸 플러스시키는 거죠.

어떻게 대답해줘야 하는지 그런 것 가서 본인도 배우셔야 되고요... 쉽지 않아요.

우리야 당연히 그 햄스터를 먹으려고, 혹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거기에 경악하는 거지만 누나는 그 모든 이해에 단계가 필요해요.

그런 사람에게 대뜸 "누나 미쳤어? 먹으려고 그랬겠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누나가 지금 굉장히 안정되어 있지만, 사실 십 년 넘게 치료받으면서 아무 일도 없지는 않았어요.

누나의 치료가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인데도요.. 저도 솔직히 가끔 누나랑 이야기하고 할 때

누나가 무서울 때가 있지만.. 누나가 하는 모든 억제된 행동과 좋은 결과가 누나 속으로 얼마나

힘들고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이루어지는 건지도 이해해야 해요. 우리에겐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여도요.

가장 중요한 건, 사이코패스도 기본적으로는 장애라는 걸 이해해주셔야 해요.

아까 쓴 거에서 빠진 게 이것저것 있는데 뭘 빠트렸는지 잘 생각이 안 나네요 ㅠ

여하튼 오빠분의 공격성이 이미 도를 넘었고, 동물을 자르거나 학대하고, 죽이는 단계에 갔다면

병원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고요. 오빠분만 병원에 밀어 넣으시면 되는 게 아니라

가족분들 협조가 진짜 많이 필요하고요, 동생분도 동생분이지만 제 생각에는

부모님이 제일 많이 힘드실 거예요.

동생분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부모님을 설득시켜서 치료를 받게 하시고,

오빠를 무서워한다는 느낌을 오빠에게 주지 마세요. 이것도 병원에서 가르쳐줄 거예요.

잘 치료되시길 바랄게요.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리플 달고 하세요.

최대한 가르쳐 드릴게요.


나는 이 글이 무섭거나 이질적이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거의 비슷했으므로. 모든 중증 정신병은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뇌를 바꿀 수는 없으니 겉으로 보기에 세상과 유리되지 않도록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전두엽이 망가져있는 상태에서 물리적인 복구는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쇠꼬챙이를 뇌에 넣어 돌렸다고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그렇다면 평생 전두엽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신경다양인(정신병자를 부르는 pc 한 호칭)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의 경우에도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다. 약을 먹으면 많은 증상들이 사라지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 역시 망상장애가 도진다. 그러면 내 주변 사람들이 그건 망상장애이고, 너는 지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인지도식을 하나씩 검열해 준다. 그런 식으로, 나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다. 나는 내 오감이 잘못되었다는 병식이 있는 환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에는 아주 힘들다.


전에 나는 조현병이란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는 방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믿음에 대하여 (brunch.co.kr)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약을 아주 잘 먹어야 한다. 약은 보통 살을 20kg 가까이 찌우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너무 먹고 싶지 않은 부분이 존재해도 먹어야 한다. 그렇게 매일 살얼음을 밟듯 최선을 다해도 상태가 나빠지는 순간들이 있을 때 쉽사리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예후가 좋은 편임에도 수시로 잘못된 인지도식을 가지면서 죽음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는 이유는 쉽사리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다. 모든 정신병과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한다. 순간의 희망과 다수의 절망과 싸워 가면서.




제가 이번 주 주말에 너무 아파서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 글 퀄리티가 그렇게 좋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아요, 구독, 댓글 달아주신다면 제가 아픈 것도 어느정도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글을 공장처럼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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