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물고기 | M87수인
눈이 가득 쌓인 산의 비탈길에 서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나보다 앞선 길 위, 오목하게 튀어나와 조금 높은 곳에 청아한 옥색으로 빛나는 수사슴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언젠가 사진이나 영상에서 봤던 오로라처럼 빛이 나고 경이롭다. 이 빛은 마치 수사슴의 온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피처럼 생생하게 움직인다. 수사슴은 고개를 돌려 비탈을 사뿐히 오른다. 홀린 듯이 나도 수사슴을 따라 오른다.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이상하게 춥지 않았고 미끄러울 것 같지만 조금도 미끄럽지 않았으며 산을 오르면서 힘들지도 숨이 차지도 않는다. 이내 정상에 다다르자, 고원지대가 드러난다. 오를 때는 잘 몰랐는데, 고원지대 위로 하늘을 보니 밤이다. 어둑하지만 눈보라 때문인지 엷은 먹색으로 뒤덮였고 달과 별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오직 단 한 색상으로 덮여 있어, 더욱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진다.
어느새 나는 나보다 세배 정도 큰 백호를 타고 달리고 있다. 수사슴처럼 청옥으로 빛이 나지만, 온통 청옥이 아닌 호랑이의 줄무늬 부분만 청옥이다. 이 고원지대의 끝은 낭떠러지다. 그즈음에 빛이 없어 색을 잃은 나무들이 낭떠러지임을 알려주는 듯이 바리케이드처럼 촘촘하고 올곧게 무리 지어있다. 하지만 백호는 당연한 듯이 이 바리케이드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서 훌쩍 뛰어오른다.
낭떠러지의 반대편에는 다른 산맥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고원지대와 저 산맥 사이의 낭떠러지, 즉 협곡은 그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어둡다.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나는 반대편의 땅에 백호의 발이 닿기 전에 덜컥 깨어난다.
또 그 꿈이었다. 언제부터 이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꿈속에서 놀란 가슴을 잠잠히 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시계를 확인해 보니 새벽 5시(묘시卯時)였다. 이 꿈을 꾸고 나면 언제나 이즈음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왼쪽 이마가 아파온다. 아마도 이 꿈을 꾼 후부터였을 것이다. 이마가 슬그머니 아파오길래 이마 쪽을 문지르다가 화들짝 놀랐었다. 왼쪽 이마의 피부가 말라붙은 비늘처럼 변해있었다. 게다가 물고기의 비늘무늬대로 홈이나 파여있었는데 마치 가뭄이 일어나 갈라진 땅 같기도 했다. 그리고 눈은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며 뿌옇게 보였다.
이 꿈을 꿀 때마다 이마의 피부는 깊게 갈라지며 아파왔고 초점을 맞추어 선명히 보는 순간은 더 짧아져 대부분 뿌연 시야로 생활해야 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이마가 깨지는 듯한 고통과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통과 두려움과 억울함에 가슴이 답답해져서 잠옷으로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위에 아무 재킷이나 걸쳐 입고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