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렇답니다. 많이 힘들죠?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2018년, 저는 스물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새해를 참 힘들게 맞이했어요.
저는 13년째 해외에서 공부 중입니다. 막연하게 2018년 여름에는 박사학위를 따겠거니 생각해왔는데, 지금은 건강 상의 이유로 휴학 중이에요. 여기서 휴학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말 특별한 일이 있어 예외적인 경우로 학교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대학원생들은 거의 휴학을 신청하지 않아요. 안 그래도 급한데 휴학까지 해서 어쩌려고. 하지만 주변 모든 이들이 저에게 휴학을 권했고, 몇 달 버틴 뒤에 결국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학교 측에 휴학을 하겠다고 메일을 한통 보냈는데 그쪽에서 모든 처리를 해 줄 정도였어요.
건강 상의 이유로 휴학을 하는 중이다 라고 얘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저를 이상하게 봅니다. 저는 지금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건강하거든요. 특히 세 달 전과 비교해서는요. 병원에 입원을 한 것도 아니고, 저의 SNS에는 아침저녁 산책과 운동한 얘기만 종종 올라오니까 남들의 눈에는 의아하게 보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많이 아프고, 매일매일이 힘겹답니다.
저는 작년 말에 거식증을 진단받았습니다. 신경성 식욕 부진증 (Anorexia Nervosa)이라고 불리는 섭식장애의 한 종류로, 급격한 체중감소와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병인데,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 병이기도 해요. 치료를 시작하고 3달이 지난 지금,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정상 체중을 되찾았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 훨씬 힘드네요. 어느 날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날은 밑도 끝도 없는 우울감이 몰려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참고로, 거식증이 걸렸을 때의 제 상태에 대해선 -- 그 당시 몸무게라던지, BMI라던지, 구체적인 수치들 -- 일절 말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만약 지금 섭식장애로 힘들어하고 있는 분이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그런 숫자들은 더 섭식장애의 생각을 강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겉으로는 너무나도 평범한,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이런 환경을 만들어 준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의 삶의 크고 작은 부분들을 섭식장애가 집어삼켰어요. 예쁜 옷, 새로 나온 영화, 맛있는 음식, 친한 친구... 모든 것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습니다. '거식증을 앓고 있는 나'가 만들어내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하면서 삶의 모든 것은 먹는 것과 운동하는 것으로 돌아가게 되었거든요. 섭식장애의 치료는 이런 '거식증을 앓고 있는 나'를 밀어내며 마음속 깊숙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건강한 나’를 조금씩 되찾아 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한순간에 되지 않고, 개개인에 따라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 힘겨운 과정이에요. 힘든 과정이니까, 힘든 게 당연한 거예요.
되짚어보면 저는 비록 작년에서야 거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 전에도 꾸준히 섭식장애를 앓아왔습니다. 경도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하나씩 거의 다 거쳐간 것 같아요. 거식증, 폭식증, 대식증,... 오랫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들을 하나 둘 꺼내보려 합니다. 저는 지금도 치료를 받는 중에 있는데, 무엇보다 큰 힘이 됐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격려였어요. 많은 분들이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숨기시는데, 그러면서 점점 더 고립되고 병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먹는 것,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힘드신가요? 정상적인 식이 생활이 안되고 있나요?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