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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난나 Aug 21. 2022

다짐하는 주말 저녁

사명이 있는 삶을 꿈꾸며

무겁게 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에 와있다.  

한 20분째 기사를 검색하고 블로그 댓글을 달거나 핸드폰을 바라본다.

아직도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은 익숙치 않다.


아마도, 여기서는 '작가'로 불리는 많은 사람들의 뛰어난 문장이 저마다 각각의 색깔을 뽐내고 있기에 내 마음대로 일기장에 쓰듯 무언가를 써내려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언가 특별한 나만의 것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사실은 요즘 끝도 없이 반복해서 역할극?을 하며 놀아달라는 아이 때문에 좀 지치기도 하고 내 시간이 너무 없는 듯한,

(주중에는 회사를 위해 일하고,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노는)그런 생활 속에서 나만의 휴식처? 내지 도피처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듯 하다.

 

지난 주 금요일에 정말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나 진솔한 수다와 즐거운 웃음으로 불금의 아름다운 밤을 장식할 때까지만 해도 정말 재미있고 좋았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며 잠이 들지 않은 아이가 있고, 난 계속 엄마와 놀고 싶어하는 아이와 연신 하품을 하며 놀아주다 겨우 잠을 재울 수 있었다.

 

이제 4살인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를 떠나서 밤잠이 든 적이 거의 없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회사 회식 같은 행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 미친? 듯이 즐기는 바람에(마치 그동안 못 논 한?이라도 풀 듯이)집에 열두시가 다되어서야 들어온 적이 있어

나를 기다리던 아이가 너무 졸려서 스르륵 잠이 들어버린 적은 있지만 늘 아이를 재우는 것은 내 몫이었다.

(아이아빠가 재우려고 시도는 해보았지만, 모유를 먹던 내품이 아이의 밤잠에 최적화된 것 같기도 한데 너무 처음부터 그렇게 길들여졌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 육아라는 것에 대해 축복이라는 생각보다는 그 무거운 책임과 의무감을 먼저 떠올리곤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육아가 없었다면 나는 내 삶에서 이토록 시간과 자유?가 소중한 것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할 이유나 경제적 자유를 이뤄야 할 이유, 그리고 건강을 챙겨야 할 이유를 찾는 데 있어 상당 부분 공백이 생겼을 것 같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 독립적인 생황에 대한 갈망이 크기는 하지만

아이가 없었을 때를 떠올리면 삶의 이유나 목적을 찾느라 많은 시간 방황해왔던 것 같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쉽게 우울감에 빠져들고, 나와 남편 둘만 건사하면 될 정도의 돈 이외의 돈을 더 벌 이유가 없었기에 한때는 과도한 쇼핑에 빠져들기도 하고 끊임없이 소위 잘나가는 남과 비교하면서 현재의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불필요한 감정 소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난 이후에는 일단, 물리적으로 하루가 너무 바삐 지나가고 상념에 잠길 시간 자체가 별로 없다.


그리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잘 양육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건강과 경제적인 여유도 중요하기에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할 목적이 분명해졌다.


또한 지금은 아이가 워낙 어리기 때문에 내 아이만 잘 키우기에도 너무나 버겁고 힘이 들 때가 많지만 어느 정도 아이가 크고 내 손길이 좀 덜 필요해지고나서부터는 다른 소외된 아이들에게도 더 관심을 가지고 그 아이들에게 사회적 가정을 만들어주는 일에도 동참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브라더스키퍼’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김성민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본인이 보호시설의 보호기간 종료로 세상에 나와서 겪은 일들 속에서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보호종료청년들에게 멘토를 찾아주는 뜻깊은 일을 하고 있었다.


보호종료청년들은 공통적으로 부모의 부재를 겪고 있어 한번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하면 끝도 없이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모의 따뜻한 격려나 위로가 없기 때문에 이른바 회복탄력성이 약한 편이라고..

 

또 김성민 대표는 주변의 많은 기관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공통적으로 '성인까지 우리가 양육을 해줬으면 됐지 뭘 더 어떻게 해줘야 하는거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하는데,

그때 이렇게 묻고 싶다고 한다.

'나는 부모가 언제까지 필요한지 답할 수 있는가?'라고.

 

돌이켜보면 나 역시 열일곱에 아버지의 부재를 겪은 이후 강인한 생활력으로 보험회사일, 식당일 등 온갖 일을 다 하시며 세 아이를 책임지려 하신 어머니의 존재가 있었기에

여러 방황기 속에서도 나 자신의 중심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 사법시험에 연속해서 떨어져 죄책감을 가져도 어머니는 '다음 번에 다시 보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돈은 엄마가 벌어서 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라고 하시며 든든한 배짱을 가지라 하셨다.

만일 내가 시험에 떨어졌을 때 이런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나는 진작에 시험을 포기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에게 있어 어머니라는 존재는 내가 사회라는 거대한 정글 속에서 두 발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렸을 때

김성민 대표의 물음에, 부모의 존재는 단지 성인이 되기까지만 필요하다고 단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훌륭한 부모의 역할을 해주기는 어렵더라도 자립을 준비하는 소외된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유사한 상황에서의 나의 경험을 들려주는 멘토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 청년은 지금 겪고 있는 일이나 고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고 현재의 상황을 이겨낼 의지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결국에는 모든 존재가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그렇기에 열심히 사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는 회의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를 보다 의미있게, 개인적 안위를 벗어난 사회적 소명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 위한 모든 일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육아에 대한 힘든 점들을 토로하며 글을 마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젊은 날인 오늘, 내일보다 하루치의 희망이 더 남아있는 지금 이 순간 희망을 꿈꾸기로 선택해본다.

 

내가 짧은 이 글을 쓰는 동안 아이와 함께 마트에 다녀오겠다는 남편의 문자가 때마침 울린다.

 

이제 다시 기쁜 맘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아이의 웃음과 함께 주말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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