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 주간과 사랑의 발견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다녀와서

by 고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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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이 말했다. 식당을 차리려면 유명한 맛집을 돌아다니며 아침, 점심, 저녁 삼시세끼를 다 같은 메뉴만 먹으라고. SBS <백종원의 3대 천왕>은 백종원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송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역시 여러 매체를 통해 같은 말을 했다. 맛을 비교하려면 하루 종일 같은 음식만 먹어보라고. 그래야 이 집과 저 집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게 될 거라고. 영화라고 다르지 않다.

큐브릭 주간으로 정한 열흘 동안 스탠리 큐브릭에 푹 빠져 살았다. 현대카드 컬쳐프로젝트 ‘스탠리 큐브릭 전’을 앞두고 열린 큐브릭 토크(Kubrick talk)에 참여했고, 그간 미루어뒀던 <스팔타커스>를 시작으로 왕복 4시간의 압박을 뚫고 상암동 DMC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을 다녀왔다. <배리 린든>, <로리타>, <시계태엽 오렌지>, <풀 메탈 자켓>,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영광의 길>, <킬러스 키스>까지 총 7편을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한 메뉴만 먹어보는 식당투어처럼 큐브릭 주간에 집중한 영화감상에서도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건 내레이션의 효과적 활용이다. 특히 <배리 린든>과 <로리타>에서 내레이션의 역할이 컸다. 이미 완료된 사건을 내레이션을 통해 미리 언급하며 주인공이 어떤 결정적 계기로 몰락하게 되는지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다소 밋밋하게 진행될 수 있는 시대극과 통속극이란 장르에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추가됐다. <풀 메탈 자켓>에서는 내레이션이 다른 방식으로 연출에 영향을 줬다. 군 기자(ex 국방일보)라는 주인공의 배경과 맞물려 일련의 사건들을 리포팅하는 것처럼 연출하는데, 이는 영화가 마치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베트남전’을 바라보는 시각에 객관성을 더한다.

차이점은 미장센이다. <시계태엽 오렌지>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보이는 독특한 의상과 세트는 우리가 큐브릭이란 감독을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극도로 과장된 표현주의적 상징체계를 보여준다. 반면 <배리 린든>, <풀 메탈 자켓>은 그야말로 고증의 끝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18세기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조명을 햇빛과 촛불로 썼다는 에피소드는 너무나 유명하다. 큐브릭이 SF, 스릴러, 공포, 시대극, 전쟁,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걸작을 만들 수 있던 배경에는 이처럼 영화의 주제나 시대에 어울리게 정교하게 설치된 미장센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 완벽함을 위해 스텝들은 개고생을 해야 했겠지만.

행복한 큐브릭 주간이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2박3일간 속초로 여행을 가는 탓에 주말에만 상영한 <샤이닝>을 포기해야 한다. <스팔타커스>를 빼고는 주요 작품을 다 봤기도 하며 눈 내리는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인데다가 무엇보다도 나를 큐브릭의 세계로 이끈 첫사랑 같은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CGV에서 큐브릭 특별전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빠르면 새해가 되자마자 큐브릭의 영화를 저 멀리 상암DMC나 종로3가까지 가지 않아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완벽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사용되는 시대지만, 큐브릭은 완벽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예술가 중 한 명이란 수사가 아깝지 않다. 그의 영화를 바라보며 완벽에 대해 꿈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 아닐까. 다행히 큐브릭은 완벽에 이르는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다. 큐브릭 일대기를 다룬 영화 <스탠리 큐브릭-영화 속의 인생>을 만든 다큐멘터리 PD이자 그의 처남인 얀 할란은 큐브릭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집요할 정도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상을 사랑하라”. 비록 큐브릭 영화에서 사랑을 발견하긴 어렵지만 불완전한 시대에서 완벽을 찾는 것도 결국 사랑이란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