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과 수면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만화영화'라 불리던 그 시절. 90년대 후반쯤부터 시작한 케이블 TV 서비스 덕에 투니버스와 같은 만화 전문 채널도 생겼지만, 사실 그전까지는 색채를 띄고 움직이는 만화영화가 매우 귀했던 시기였다. 만화 월간지 '보물섬'을 정기 구독해서 보고 우리 아파트 상가뿐 아니라 옆동네 상가의 도서 대여점까지 섭렵했었지만 그럼에도 난 매일매일 만화가 고팠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경건한 마음으로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조기 축구회에 공 차러 나가시던 아빠, 일요일만큼은 늦잠의 권리를 지켜내셨던 엄마,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늘 아침잠이 많았던 언니가 없는 일요일. 거실 TV 리모컨 서열 1~3위가 자연스럽게 정리된 덕에, 일요일 아침은 만년 서열 4,5위였던 나와 남동생이 오롯이 TV를 차지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신기했다. 학교를 가야 했던 평일 아침과 달리 일요일 아침이면 알람도 없이 눈이 번쩍 떠졌다. 그때만큼은 동생과 나는 마치 수많은 전장에서 함께 작전을 수행한 동료처럼 손발이 딱딱 맞았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방에 들어와 깨워주었다. 한 번도 '야 일어나'라고 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방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관에서 깨어난 좀비처럼 발딱 일어났기 때문에.
끈끈한 눈곱으로 딱 붙어버린 두 눈을 겨우 뜬 주제에 동생과 나는 역할 분담을 위한 눈빛 교환만큼은 늘 정확히 나눴다. 한 사람이 주방에서 토스트 기에 식빵을 한쪽씩 넣고 있으면 남은 한 사람이 프라이팬에 대충 계란 두 개를 올려놓고, 흰 우유를 한 컵씩 따랐다. 일요일 조식을 위한 모든 일은 물 흐르듯 순조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준비는 8시를 위한 것. 상은 커녕 트레이랄 것도 없이 맨바닥 접시와 컵을 놓고 거실 TV 앞에 자리 잡는다.(엄마나 아빠가 '그러다 TV 속으로 들어가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바로 그 자리) 때마침 한참 광고 중인 TV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떠 있던 프로그램의 제목이 사라진다. 나와 동생은 이미 '디즈니 만화동산'으로 갈 준비가 완벽히 끝난 후였다.
1시간 가량의 방송 동안 15분-20분가량의 각기 다른 애니메이션 두세 개가 방송되었다. 그 동안, 나와 동생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방구석 1열을 지켰다. 누군가 '저 캐릭터 뭐였지?'라고 말하면, 다른 한 명이 지난주를 복기하며 설명해주면 '아~맞다!'라 하며 신기하게 기억이 돌아왔다. 둘 다 좋아하는 만화의 오프닝이 나오면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토스트를 다 먹을 때 즈음, 혹은 마지막 만화가 시작될 즈음이면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럼 동생과 나는 닌자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한참 뒤쪽의 소파에 올라가 앉았다. 거실로 나온 엄마에게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를 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에서 '따따따따' 가스레인지를 점화하는 소리가 들릴 즈음, 혹은 초인종이 울리며 인터폰 화면에 땀에 절은 아빠의 얼굴이 보일 즈음 마지막 만화가 끝나곤 했다. 경기를 마친 운동선수들이 악수를 하며 '굿게임'을 말하듯, 동생과 나는 토스트 접시와 유리컵을 치우며 오늘의 만화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내겐 그렇게 상쾌한 기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많은 날들 중에서 가장 그리운 아침이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든든한 기상 동지였던 동생에게 토스트를 2개 구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