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지 마' 언니가 먼저 해 볼게.(2)

언니

by 홍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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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얘기하며 아빠의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차츰 알게 되었다. 아빠는 벽 너머에는 위험이, 벽 안에는 안전이 있다고 믿으셨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위험할 것 같은 일은 벽 너머로 옮겨서 우리가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려 하셨다. 하지만 대학을 가고부터는 아빠도 그 벽에 문을 달아주어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해 줬고, 성인이 된 언니는 내게 '너도 해도 돼.'의 축제를 열어주었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언니가 친구와 단 둘이 한 달 넘게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부모님의 얼굴엔 근심이 번졌지만, 믿을만한 친구에 똑 부러지는 여행 계획을 보여드리니 이내 수긍하셨다. 까맣게 타서 돌아온 언니는 입국하자마자 공항에서부터 상상만 해도 멋진 추억을 잔뜩 들려줬다. 고3이었던 나는 귀를 쫑긋, 눈을 반짝이며 파리 개선문 위에 올랐다가 로마 콜로세움을 거닐었다. 나 역시 대학교 3학년 때 동기와 단 둘이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허락은 받을 것도 없었다. 그때의 부모님은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다녀와야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언니도 휴학을, 나도 휴학도 할 수 있었다. 휴학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유예 기간 동안 알뜰살뜰 바쁘게 보내고 나니 지금도 휴학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반 무렵 언니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사정이 생겨서 집으로 들어가게 되자 그 덕에 나도 인생 첫 자취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언니 학교 앞이었지만, 이게 누구 덕인지 너무 잘 알았기에 행여나 부모님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후다닥 짐을 싸서 올라갔다.


어느 날엔가 언니는 아무 말없이 나가서는 머리를 샛노랗게 탈색하고 집에 와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다. 홍대에 있는 힙합 클럽에 다녀와서 프리스타일 랩을 하는 뮤지션들에게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고가의 디지털카메라를 샀고, 돈을 모아 친구와 틈틈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너도 해도 돼.' 오케이. 그래서 나도 했다. 폭탄 맞은 듯한 파마머리를 했고, 힙합 뮤지션의 공연을 보러 가고, 과외비로 구입한 카메라를 메고 가까운 나라로 떠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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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부터 즈음 차츰 언니와 나의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생애주기에 맞춘 과업들은 사라지고 각자의 인생 주기에 맞는 새로운 사건이 들쑥날쑥 등장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더 이상 언니는 나에게 '하지 마'와 '해도 돼'를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보다 더 든든하고 커다란 조언자로 남아있다. 이직을 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이사를 할 때도, 직장 동료와 언쟁을 할 때도, 자동차를 바꿀 때도, 삶에서 낯선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면 늘 전화를 걸어 묻는다.


"언니, 지금 바빠? 나 일이 좀 있는데..."


나는 안다. 지금까지의 언니의 삶과 나의 삶을 통해 알았다. 나를 향한 언니의 말속에는 의심할 수 없는 순도 100%의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너는 하지 마' 때와 같은 마음으로 내 고민 위에 도움의 실마리를 얹어준다.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매콤한 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럴 때 난 하나도 서운하지 않을뿐더러, 그 말을 하는 언니도 내가 서운해할 거라 생각안 할 거다. 둘 다 진심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언니가 요 몇 년 새에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언니도 그렇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언니의 충고 속에서 가끔씩 예전 아빠의 벽이 살포시 느껴진다. 물론 견고한 아빠의 벽에 비하면 매우 얕고 가벼운 울타리 같은 재질의 토닥임이다. 언니는 이제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치거나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졌나 보다. 특히 안 좋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내가 마음을 베여 오래 쓰라려할까 봐 걱정을 내비치는 일이 많아졌다.


내 앞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언니 덕분에 피해온 실패와 다툼, 미운 말들. 내가 피한 만큼 내게 주어진 몫이 언니에게 간 건 아니었을까. 살면서 갚는다는 마음이 간사할지 몰라도, 이렇게라도 나의 든든한 호적 메이트, 나의 멋진 혈육의 무사와 안녕을 빌고 있다. 삶에서 늘 지니고 있는 할 마음가짐 중 하나, 무한대로 언니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나는 아니어도 좋으니 앞으로 언니만큼은 해도 되는 일, 할 수 없는 일 따위 없이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곧 나의 행복이다.


1000_F_201787314_ly0zJISgnmkDOSFtTmyOC3AnIFXyYG1A.jpeg 사진 출처 : https://stock.ado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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