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리이상 Apr 05. 2019

꿈을 꾼 D씨



"꿈을 꿨어, 나." 침대 옆에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던 내가 돌아보았다. D는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물었다. D는 아직 꿈의 여운이 남았는지 가만히 눈만 껌뻑였다. 나를 보고있지만 나를 보고있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나의 뒤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라는 존재 너머로 시선을 던진 것처럼. 

"아침인줄 알았어." D가 말했다. "소리가 들렸어. 새소리랑 공사하는 소리. 땅! 땅! 하면서 철근을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 있잖아. 보통 공사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니까. 그게 막 빌딩을 짓거나 이런 소리가 아니라, 동네에 빌라같은 걸 짓는 정도의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 그런 아침 알아? 날이 따뜻해지면서 창문을 열어놓기 시작하고, 온 동네를 오감으로 느끼며 일어나게 되는 아침. 어딘가에서 밥짓는 냄새와 어제 먹은 된장찌개를 뎁히는 냄새가 나고, 누군가 샤워하는 소리, 출근하면서 달려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공사장 소리 등. 하루가 시작하면서 밤새 굳은 몸을 기지개피며 나는 소리나 냄새, 바람 등이 느껴지는 거야. 그런 것처럼 꿈에서도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뭔가 콕 찝어서 뭐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요리하는 냄새랑 비누냄새가 섞인 것 같은 그런 냄새. 누군가의 요리와 누군가의 샤워가 동시에 일어나는 집 안에서 날법한 그런 거 있잖아. 나는 아침인걸 확신했지. 하지만 난 딱히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날이니까 그냥 누워있었어. 눈도 뜨지 않았던 것 같아. 근데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던 공사장 소리가, 그 땅! 땅! 하며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어."

D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

"아.. 근데." 생각이 잘 나지 않는지 눈을 굴렸다. 나는 이해했다. 그럴 때가 있다. 꿈은 아침에 일어나 분명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맥락은 기억나지만 디테일이 기억나지 않거나, 느낌은 남았는데 스토리는 떠오르지 않는다. 근데 억지로 설명하다보면 이 모든게 거짓같아진다. 내가 꾸지도 않은 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D도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닐까. 열심히 어둠 속에서 실낱 같은 단서를 찾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리가 들려왔어." D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어. 눈을 뜰 수 없었어. 왠지 무서워지기 시작했으니까. 근데 눈을 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보이기 시작했어. 어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야."

"유체이탈?" 내가 물었다. "어, 맞아. 그런 거." D가 대답했다. "누군가가 땅! 땅! 하면서 망치로 뭔가를 두드리고 있었어. 목장갑을 끼고 있고 하얀색 헬맷을 쓰고 있었고 회색 작업복 같은 걸 입고 있엇어. 그가 뭔가를 두드릴 때마다 그 힘이 형태를 가지는 것 같았어. 마치 그 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어. 건물을 짓는 건, 시멘트와 돈, 건축가의 설계나 디자인이 아니고 내 힘이라고. 내 힘이 이렇게 소리로, 소재로 모양을 갖추게 되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아니, 협박하는 것 같았어. 세뇌라고 해도 될 것 같아. 여튼 굉장히 힘을 가지고 힘이 말하고 있었어. 땅! 땅! 하고. 그러면서 내 주변 세상도 모양을 갖기 시작했어.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햇살, 비누냄새와 찌개냄새가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거야. 땅! 소리에 맞춰 각이 생기기도 하고 땅! 소리에 맞춰 모서리가 깎여나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땅! 땅! 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세상이 보여지게 만들어지는데, 어느 순간 소리가 싹- 사라진거야."

D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그 때 나는 깨달았지. 내가 눈을 감고 있다는 걸. 그리고 눈을 떴는데, 그게 지금이야."

D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D를 바라보았다. D는 약간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꿈을, 깬 거야."

나는 손에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책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창문은 닫혀있었지만, 멀리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D의 눈에 불안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작고 가늘게 숨을 쉬었다.

"맞지?" D가 물었고, 나는 숨을 더 작고 조용히 쉬기 시작했다. 점점 소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흥분한 A씨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