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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Jul 01. 2024

네, 저도 여전히 엉망입니다만

산책과 커피 : 독립 마케팅 스튜디오의 넋두리 다이어리 10

유재석의 유튜브 채널 뜬뜬에 최근 구교환 배우가 나온 편을 보았다. 거기서 유재석이 구교환에게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라고 물었다. (사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직업에 관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구교환 배우는, 자신이 이 일을 하고 있어서 너무 좋고 다행이라고,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실수 투성이였다는 말을 하면서 ‘저 완전 엉망이에요.’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모두 빵 터지는 순간이었는데, 나는 그 장면에서 이상한 쾌감 같은 걸 느꼈다. 그래, 어딘가에서 잘하는 사람이 또 다른 곳에서는 엉망일 수 있지. 그리고 때론 어떤 것에 엉망인 나를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지. 누군가 자신이 엉망이라고 말하는 순간에 마음 놓고 웃는 것, 거기서 뭔가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 감각의 근본은 뭘까?


늘 잘해야한다고 생각하며 느껴지는 압박과 부담이 있지만, 사실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때가 많다. 의외로 일의 영역에서 더 그렇다. 잘하지 못할 것 같다고 겁을 먹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확실히 나을 때가 있다. 물론 안하는 것보다 못한 상황도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피해야하는 순간이 그럴 때다. 그럼에도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세상은 결국 매순간 난관을 헤쳐가며 지나가야하는 미지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아무것도 안하는 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나도 엉망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나의 실수를 한 번도 제대로 곱씹어본 적 없는 것 같다. 나는 나의 부족한 점을 되돌아보기 싫어한다. 누군들 좋아할까? 하지만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마치 아이들이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깊이가 생기지 않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브랜드 인하우스 마케팅팀에 있을 때, 실수를 해놓고도 느긋하게 있다가 혼이 난 적 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캡션에 오타가 있었는지, 아니면 뭔가 누락했는지 여튼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큰 일은 아니고 수정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사건의 경중이 아니었다. SNS에 업로드 된 공식 게시물에 실수를 상위 레벨에 누군가가 발견했고 그것을 팀장한테 직접 바로 전달한 것이다. 그때가 내 기억으로는 아마 점심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만 신속하거나 민첩하게 움직였다면 바로 대응할 수도 있었던 일인데,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점심만 먹고 들어가서 수정하지, 뭐’ 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이렇게 어떤 사건에 뜬금없이 대범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심지어 그때 아예 밥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느긋하게 들어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자 팀장이 그런 나를 보고 바로 회의실로 호출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화를’ 냈다.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대응하는 태도에 화가 난다, 라는 식으로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나도 그냥 얼버무리지 않고 사과했다. 제가 잘못했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음부턴 제대로 하겠다. 실제로 그리고 그 다음부터 그런 일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게 오싹한 기억이다. 에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왜 내가 할 수 있다고 믿고 당당하게 느긋했을까. 조직의 상하 관계와 역학적인 구조를 과소평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식으로 태도의 공백이 드러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내가 한 3-4년 차 정도 되었을 때였다. 한 가구 브랜드의 행사 담당 AE로 일을 한 적 있었다. 당시 매장에서 콘서트도 하고 고객과 블로거 (당시엔 블로거가 인플루언서였다) 초청하여 홍보 활동도 하고 이어서 참여 이벤트도 하는 나름의 새로운 캠페인 활동이었다. 우리 회사는 운영과 기획 담당으로 붙어 있었고, 종합대행사 출신의 CD님이 나와서 전체 캠페인을 지휘하는 구조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본사 카운터 파트너는 대리가 하나 있었고 내부 이너서클에 있는 키맨이 한 명 있었다. 일이 늘 그렇듯, 좌충우돌하면서 캠페인을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행사 당일, 초대 블로거 리스트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로 착오가 있어서 리스트에 없는 사람이 방문하기 시작했고 현장 자리 배치와 동선, 인원과 사전 정보 모든 것이 꼬였던 것이다. 경험이 없던 나는 이게 누구 때문에 생긴 일인지 메일을 뒤지며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당시에 키맨이, 왜 이렇게 된거에요? 라고 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 CD님이 오셔서 일단 그런 건 다 끝나고 확인해도 되니까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하셨다. 그 말은 여전히 일할 때 가이드로 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단 좌석 배치를 수정하고 자리를 마련해서 무사히 행사가 진행될 수 있게 하고, 서로의 감정이나 상황이 정리된 다음에 잘잘못을 가리고 필요한 건 조정하면 된다는 거였다. 실제로 다 진행되고 나니까 별로 큰 일이 아닌 일이 되었다. 좋게 좋게 흘러간 것이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행사가 다 마무리가 되고 다들 약간 격양된 태도로 수고하셨다, 덕분이다,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CD님이 나와 키맨을 향해서 둘이 좀 친해진 것 같네? 라면서 농담을 던졌다. 그때 내가 왜그랬는지, 그 키맨의 어깨동무를 하면서 좀 그렇죠? 라고 말했다. 키맨의 대답이 가관이었는데, 얼굴이 진짜 차가워지면서 저는 아닌데요? 했다. 나는 머쓱하게 손을 내리고 바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아 내가 선을 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이불을 찬다.


크고 작은 실수들은 매일 벌어진다. 실수가 없는 것은 말이 안되고,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일 수록 그저 실수들을 잘 대응하고 커버할 수 있는 배포나 권한이 생길 뿐이다. 모든 건 경험을 토대로 쌓인다. 어떤 사람은 근본적으로 배포가 있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은 또 자잘한 것은 괜찮다가 큰 일에서 사고를 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디테일한 건 실수하다가 큰 것은 잘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모두 특성이 다르고 개성도 다른 법이다. ‘나’를 잘 아는 건 ‘나’라고 생각하게 되긴 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내가 모르는 ‘내 모습’도 분명 있다. 나는 나 조차도 미지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런 순간을 발견하게 되길 기다리며 나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뭔가 부딪치고 무너지고 비틀려야 한다. 그저 ‘내’가 만든 ‘나의 모습’을 지킨다고 해서 ‘나다운’ 삶이 자동으로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자꾸 ‘나’를 무너뜨려야만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엉망이다. 삶은 고되고 인간은 나약하다. 끊임없이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그걸 억지로 낮추려고 노력하는게 인간의 생을 관통하는 숙제다. 해결되지 않는 것을 해결하겠다고 언덕 위로 커다란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내는 삶. 너무나 엉망이다. 하지만 그 보편적 엉망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보며 뭔가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감정이기도 하고, 연대이기도 하고, 또 희생이기도 하다. 엉망인 순간이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어쩌면 더 안전하고 건강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구교환 배우의 모습을 보며 정화되는 마음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2024년이 딱 반으로 접혀서, 다음 단계가 시작된다. 나는 또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고 새롭게 쌓여갈지 모르겠지만, 엉망이 내 모습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괴로워하다가 건강하게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만의 평균을 만드는 것, 그것이 건강이라고 믿는다. 나의 실수들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생각나는 사건이 있으면 다음에 또 적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Q. 여러분에게도 엉망이었던 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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