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곧 2월이라니?

넋두리 다이어리 24

by 리쌩전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 원두로 ‘뉴이어’라는 이름의 원두를 골랐다. 커피를 주시면서 새해인사를 해주시길래, 아 아직 새해인사가 낯설지 않은 시기구나, 라고 깨달으며 커피를 받았다. 새해가 된지 3주가 지났다. 새 사무실에 들어간지 이제 10일이 지났고, 나는 올해 15년차가 됐고 마흔이 됐으며 신춘은 왕창 떨어졌고 숙취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히 여전하고, 여전히 미숙하고 또 미흡하다.


사무실은 복도를 마주하고 있는 벽이 통유리로 되어있다. 같은 층의 다른 사무실은 불투명 코팅 같은 게 되어있어서 안이 보이지 않는데 내가 있는 곳은 그냥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서 속이 다 보인다. 그래서 유리벽면에는 커튼을 쳤지만 문도 유리로 되어있어서 포스터를 붙여두긴 했지만, 문에 남는 공간 사이로 사람들이 자꾸 힐긋힐긋 들여다본다. 다행히 복도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지만, 그냥 혼자서 전화를 하다가 걸어온다거나 양치를 하면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지나가기도 하고 관리소장님이 보이기도 한다. 뭔가 움직이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아마 바깥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나가다 유리가 있고 안쪽이 들여다보이면 그냥 보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유는 나중에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뭐하는 곳인지 궁금해서 봤어요. 새로 오셨다고 해서 와봤어요. 정말 그 이유로 시작했을까?


과학 이야기 하는 유튜브를 즐겨본다. 즐겨보는 사람이 나말고도 꽤 많은지 영상마다 조회수도 잘나오고, 과학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더 늘어났다. 어쩌면 실제로 늘어나진 않고, 알고리즘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가끔 이런 게 심각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나에게 최적화 되어있어서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SNS를 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일단 ‘나의 선택’을 기준으로 한번 필터로 걸러진 것이라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여튼, 최근에 본 과학 콘텐츠에서 물리법칙이란 건 결국 ‘인과율’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원인 다음에 결과가 오는 것을 말한다. 그 순서를 위배할 순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결과에는 어떤 원인이 있다. 가끔 이게 어떤 이유, 왜? 라는 질문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굳이 ‘가끔’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어떤 이유, 어떤 왜? 는 꼭 원인이 아니어도 설명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냥, 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 것 그저 물음과 답을 나누며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것이 있다. 단어에 집착하기 보다는 개념과 상황을 수용하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특히 사람과 함께 하는 일들이 그렇다.


단순히 설명할 수 있는 정답이 있다면 좋으나, 사실 많은 것들은 ‘정답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정답처럼’ 보이기 위한 배경과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이 주목을 받고 상황에서 힘을 얻는다. (이 단계에서 운이 많이 작용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정답’을 많이 가지고 있고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답을 ‘만들’ 수 있는 능력 때문에 각광받으며 성장하기도 한다.


어제 촬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필요한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겐 편리함이 사람의 인생을 꼭 긍정적으로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사실 불편함을 겁내지 않고, 무릅쓰고 나아가야지만 얻게 되는 변화가 있기도 한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운동이나 공부가 그렇다. 어떤 사람은 공부가 즐겁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운동과 공부를 힘들어 한다. 하지만 해야하니까 하는 것이다. 불편하고 하기 싫고 귀찮고 번거롭지만, 하는게 좋냐 안좋냐 라는 물음에 너무 쉽게 좋긴 좋지… 라고 말하게 되는 일. 그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함을 피하려고만 하면 결국 동물적, 욕망적 존재로 납작하게 변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하는 것은 나 자신이 도태되고 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합당한 정답을 마련하기 위해 공간을 구했다. 사무실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우선 일을 평소보다 더 하게 되고 또 다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 외에 싫거나 불필요하거나 성가신 일들 투성이지만, 즐길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이려고 한다. 왜냐면, 그냥 그런걸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2024 털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