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한 적 있어?" L이 물었다. "사랑한다고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해본 적 있어?"
"있지." 내가 대답했다.
"그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말했던 적 있어?"
나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려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 대답을 못하고 있는 사이 L이 다시 물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도 사랑했을까. 원래 사랑했는데 말하지 못하다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순간 사랑이 어떻게 됐어? 아니면 그 전에는 모르다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이 됐어? 사랑한다고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언제야?"
L은 대답을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랑해." L은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안절부절하는 기분이 들지 않아? 누군가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면, 사랑한다는 말로 되돌려줘야할 것 같은 부채감이 생겨."
나는 글쎄, 하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L은 관심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래.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아. 어제 애인이 묻더라. 나를 사랑하냐고 말이야. 근데 보통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한다고 말하거든. 어쨌든 7년이나 됐잖아. 아니, 7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걸 물어본걸까?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좀 헷갈려."
L은 엉망진창인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뭐가 헷갈려?" 내가 물었다.
"정작 그 얘기를 들으니까 한 번에 대답을 못하겠는 거야. 나는 그게 이상했어. 어라? 왜 나는 바로 대답을 못하지? 지금까지 애인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지내왔던 세월이 반올림하면 10년인데, 나는 왜 저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하지? 처음에는 애인을 탓했어. 사실 그렇잖아. 나를 사랑해? 라고 묻는 것은, 나는 지금 너의 사랑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라는 거잖아. 별다른 계기도 궁금증도 없이 그런걸 물어보는 사람이 있기는 해? 뭐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사랑에 부족함을 느낀다거나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잖아. 왜 문제 없는 사랑에 너는 태클을 들어?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닌거야. 이건 완전 가해자 마인드인 것 같은거지. 분명히 애인은 뭔가 느꼈어. 근데 그건 내 잘못인거야. 그러니까 물어봤겠지. 그 생각까지 가니까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라. 나는 걜 사랑하나? 스스로 물었어. 근데 갑자기 답이 나오지 않더라. 그러다 나중엔 질문이 바뀌었어. 나는 얠 사랑한 적 있었나?"
나는 가만히 L을 바라봤다. L은 조금 격양된 것 같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다 헛수고? 아니 헛수고라고 말하는 건 어울리지 않아. 뭐랄까, 의미 없는 시간? 나는 왜 한 번도 사랑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본 적 없었는지 자괴감이 들더라고. 그래서 인문학이 중요한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알랭드 보통 책을 읽으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며? 왜 안읽었지 싶기도 하더라. 대체 사랑이 뭐야. 사랑이 뭐길래 이러는 거지. 근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무 대답도 안하고 있었더라고."
"헐" 내가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말을 꺼냈어." L이 말했다. "사랑이 뭔데?"
"사랑이 뭔데?" 내가 L의 말을 되풀이 했다. L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악이네."
"최악이지." L이 말했다. "그리고 바로 가방들고 나가더라. 아직도 연락이 안돼.”
"최악이네." 내가 말했다.
"최악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