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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Dec 18. 2021

육아의 추억

한때 자주 만나던 모임의 동생들이 줄줄이 출산을 했다. 많게는 스무살 가까이 적게 잡아도 띠동갑 정도 되는터라 깊은 교감을 나누진 못했지만 젊고 패기만만하고 또 한편으로는 예의바른 모습에 늘 마음이 가는 친구들이다. 며칠 간격을 두고 저들끼리 딸을 낳았다고 사진을 올리고 축하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되자 코로나 때문에 조용하던 단톡방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같이 축하와 덕담을 해주고 나서 한 친구의 딸 사진을 보니 내 아이와 처음 만나던 그 날 생각이 났다.

 


산달이 다되어 휴가를 내야겠다고 하면 ‘니가  낳냐 면박을 주던 상사들이  자리씩 꿰차고 있던 때였다. 출산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병원에 빨리 가기 위해 오후 일과를  마치기도 전에 회사 담을 넘어야 했다. 담을 넘다가 감사관과 마주쳤지만  표정이 너무나 절박하게 보였던지 퇴직이 임박했던 감사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뒤도 안돌아보고 튀었으니 말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뭐라든 말든 뒷일이 어떻게 되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던  같다.


허겁지겁 차를 몰아 처가가 있던 강릉 모 병원에 도착하니 아내는  아직 마취가 덜 풀려 회복실에 있었다. 한나절이 넘는 시간동안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할수 없이 수술을 했다고 했다. 장모님은 아내가 깰 동안 아이라도 보라며 날 이끌어 신생아실 유리창 넘어 간호사 품에 안긴 아이를 보여주셨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내 손바닥 두개정도 되는 몸집에 빨갛게 뭉개진 얼굴로 날 빤히 바라보는 녀석이 내 아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 처가에서 아이를 봐주었고 해를 넘겨 집에 오기까지도 나는 한 아이의 아빠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분유는 어떻게 타고 먹여야 할지, 기저귀를 갈때는, 밤새 칭얼거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열이나면,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면, 설사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그야말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커가는 동안 내 삶을 챙길 여유가 전혀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내 집회 상황에 동원되면 새벽에 나갔다가 자정무렵 끝나기 일쑤였고, 휴일에도 불려나가곤 했다. 늘 직장 아니면 집이었다. 친구니 모임이니, 취미니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나가면 직장이었고 들어오면 육아였다.


그래도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물거리거나 몸을 주물러주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난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아내의 선언 이후에는 하나의 결심이 섰다. 아들에게 아빠이면서, 형이기도하고, 친구이기도 한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지금 그 결심을 지키고 있는지, 나 역시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처럼 완고한 벽을 쌓고 있는건 아닌지 확신이 들진 않지만 가끔 피식 웃으며 속엣 이야기를 털어놓는 아들을 보면, 내가 걱정하는 만큼 말이 안통하는 아버지는 아닌것 같아 다행스럽다.


아무튼 그 때부터 아이가 사춘기 접어들 무렵까지 한 십년 정도, 나는 사생활 없는 시간을 보냈다. 젖을 떼기 위해 아이를 안고 밤늦게까지 아파트 단지를 돌던 기억, 무릎에 앉혀놓고 잠들때 까지 책을 읽어주던 기억, 잠자리에서 하던 이야기 잇기 놀이, 내가 더 좋아했던 팽이돌리기, 배드민턴, 야구공 주고 받기, 같이 다닌 산책길, 놀이동산, 여행의 모든 기억들, 첫심부름, 처음 함께 본 영화, 처음 등교하던 날, 혼자 한자능력시험 보고오던 날, 태권도 품띠 따던 날, 그런 생각들이 지금도 스크린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함께 누우면 품안에 쏙 들어올때의 행복감, 보들보들한 감촉과 살내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 기억들을 갖게 해준 아내와 아이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예전 사진들을 뒤지고 있는데 드르륵 하며 아들놈 담배피우고 들어오네. 확 깬다.


-짤방은 내가 젤 좋아하는 노래 Ben Folds(벤 폴즈)의 Still Fighting It 뮤직비디오 한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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