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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편견일까 진리일까

by 늘봄

"검표받았어요? 두 사람인데 아까 한 장만 했죠?"


"아니요! 아이가 한 장, 제가 한 장, 총 두 장 했는데요!!"





일로 바쁜 남편을 두고 아이와 먼저 귀성길에 올랐다. 혹시나 버스표가 없을까 한참 전부터 예약을 해두었고, 아니나 다를까 연휴 시작 하루 전임에도 내가 타는 버스는 매진이었다. 아이를 조퇴시키면서까지 낮 시간대의 버스를 선택했음에도 말이다. 오~ 명절 분위기~ 어린아이처럼 괜히 들뜨기도 했다.


요즘은 버스든 기차든 예약을 하면 QR코드가 함께 생성되어 따로 발권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종이 승차권 발급이 필요하다고 했다. '거 참 번거롭네' 하는 생각도 잠시, 다행히 기다리는 줄이 없어 죽 늘어선 키오스크를 한 번 쳐다보고는 창구로 갔다. 아직은 기계를 마주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직접 요청드리는 편이 왠지 더 확실할 것 같고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 인증인가.


잠깐의 어수선한 시간이 가고 버스 출발시각 10분 전이 되어 플랫폼으로 나갔다. 버스가 와 있었고, 차에 있던 기사가 막 내리니 사람들은 우르르 짐 칸의 문을 열어 커다란 짐들을 밀어 넣기 바빴다. 그 무리에 섞여 멀지 않은 곳에 가방을 실었고, 다시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버스 문 앞에서 검표를 하는 기사 옆으로 줄을 섰다. 한 사람 한 사람 종이 승차권의 바코드를 휴대폰으로 확인했고, 자동화 시스템의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인 것 마냥 검표를 받은 사람들은 차례차례 버스에 올랐다. 아이를 앞세워 먼저 표를 확인시켰고 다음으로 나도 따라 검표 후 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밖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의 검표를 끝내고 차에 올라온 기사는 버스 안을 왔다 갔다 하더니, 내게 와서는 다짜고짜 사람이 둘인데 표는 한 장만 확인해 준 것 아니냐고 따지듯 말을 했다. 본인이 버스 문 앞에 서서 바코드까지 일일이 찍었으면서, 무언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면 조심스레 물어도 불쾌할 수 있는데 저렇게 말을 하는 인성이라니. 바로 발권했던 표 두 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라? 사과 한 마디 없이 그냥 지나가네? 뭐 저런!! 후... 후... 참자.. 참아. 지금은 안전하게 가는 게 중요하니까.


좋은 기분으로 탑승했던 버스 안이 답답해졌다. 창을 통해 하늘을 보는데, 출발한 지 오래지 않은 차의 흔들림이 심상치 않다. 무릎 위에 올려둔 노트북이 쭉 미끄러질 만큼 급정거를 하고, 앞에 가는 차에 대고 기사는 쉴 새 없이 욕을 했다. 무슨 상황인가 복도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앞 유리창을 보니 모닝 한 대를 구석으로 몰 듯 바짝 붙어서는 상향등을 켜고 위협을 하는 모습이었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는데 차선 변경은 왜 그리 자주 하는지, 불안해졌다. 아이와 함께 알콩달콩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거나 할 생각으로 설렜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사방에 천적들이 숨어 있는 어두운 정글에 아이를 데리고 둘만 있는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대로 4시간을 버텨야 하나. 차라리 눈을 감자.


그 뒤로도 휴게소에서 정차하며 10분도 되지 않은 시간을 주고는 화장실만 얼른 다녀오라 하더니, 중간에 들르는 터미널에서는 짐 칸 문을 안 닫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시내권에 들어오니 버스 앞을 가로막는 차들에겐 여지없이 욕설을 뱉고 화를 냈다.




'ㅏ 다르고 ㅓ 다르다'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을 하고, 잘못을 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기사의 언행에 말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평소 나는 어떠했나 곱씹고 있었다. 그런데, 몇 차례의 급정거로 앞 좌석의 등받이에 몸이 부딪힐 뻔하고, 듣기 거북한 소리들이 날아오니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제목이 바뀌었다. 사실 생각으로는 '그럴 줄 알았다'가 지배적이었다. 버스에 타자 마자 당황스러웠던 그 일 이후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속담이 편견일까 진리일까를 눈앞에 띄우고 왔다 갔다 했던 터였다. 나이가 있어 보여 겉으로 보기엔 오래 일을 해 온 사람 같았는데, 오늘따라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가끔 거친 기사들이 있던데 오늘 운이 부족해 딱 그런 사람을 마주친 걸까, 말은 못되게 해도 운전은 안전하게 하겠지, 신고정신 투철한 국민이 되어볼까, 혼자서 난리 부르스였다. 그런 나의 고민을 없애주려는지 친절하게도 '역시 속담은 진리' 쪽에 직접 못을 박아주었다.


하나의 사실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성급한 일일 테다. 하지만 여러 증거가 뒷받침된다면 대체로 그렇다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를 무턱대고 의심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며 필요한 때에 사과하지 않음은 물론,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난폭한 사람의 종합세트를 보여준 기사 덕분에 아이에게 좋은 인성의 중요성을 현장체험 시켜준 꼴이었다.


"딸! 우리 딱 그 반대로만 행동해서 좋은 뜻으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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