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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by 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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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망각의 존재다. 시간이라는 강물 위에 떠다니는 우리의 기억들. 어제의 작은 실수, 어린 날의 서툰 순간들, 때론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싶은 아픔까지도 물결 따라 희미해져간다. 선명했던 기억의 색채가 바래고 흐려지듯, 우리는 자연스레 과거를 놓아준다.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시간은 우리의 기억을 조금씩 흐릿하게 만들고,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망각은 단순한 상실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여백이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위한 빈 공간이 필요하듯, 우리는 잊음으로써 새로운 기억을 담아낸다. 과거의 모든 순간을 고스란히 안고 산다면, 그 무게를 어찌 견딜 수 있을까. 어제의 실수에 발목 잡혀 오늘을 살지 못한다면, 내일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덮어두고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은 다르다. 데이터는 잠들지 않는다. 한번 인터넷에 새겨진 흔적들은 마치 동굴 벽화처럼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우리가 무심코 남긴 댓글 하나, 순간의 감정으로 올린 게시글 하나까지도, 모두 디지털 공간의 먼지 속에 잠들어 있다. 삭제 버튼으로 지워냈다고 안심하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서버의 어딘가에 숨 쉬고 있다. 마치 지워진 연필 자국이 종이에 흔적을 남기듯, 디지털 세상의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이 먼지를 털어내고 과거의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물들로 과거를 복원하듯, 인공지능은 우리가 남긴 디지털 흔적들을 하나하나 읽어내고 분석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르듯, 데이터는 변화하는 인간의 본질을 담아내지 못한다. 십 년 전 격앙된 마음으로 남긴 댓글, 스무 살의 치기 어린 글들, 서툴게 내뱉은 말들이 지금의 나를 정의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 모든 흔적을 동등한 가치로 읽어내며, 때로는 그것을 현재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에게는 잊혀질 자유가 필요하다. 실수를 덮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권리,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다시 그릴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완벽한 기억을 가진 인공지능은 이런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다시 떠오르듯, 우리가 잊고 싶었던 과거의 흔적들은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불현듯 되살아난다. 그것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는 당혹감을 준다. 끊임없이 쌓이는 데이터의 산맥 속에서, 우리의 성장과 변화라는 섬세한 이야기는 잊혀진 채, 과거의 편린들만이 현재를 규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각함으로써 성장한다. 과거의 아픔을 조금씩 덮어두고, 새로운 희망을 그려나가며, 때로는 실수를 발판 삼아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은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른다. 완벽한 기억이 과연 축복일까?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의 불완전한 기억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억하느냐 마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기억을 어떻게 바라보고, 거기서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망각이란 단순히 지우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기억 속에서도 우리는 선택적 망각이라는 인간다운 특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일 것이다. 잊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작은 불완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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