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환생
카페 라테 1
먼 길을 나선 어느 겨울날이었다.
목적이 있어 찾아간 곳이었다. 거기까지 간 김에 그 동네에 소문난 카페도 찾아 가보기로 했다.
카페 라테를 한 잔 주문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젊은 청년이 나의 커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하얀색 커피 컵을 왼손으로 받쳐 들었다.
오른손에는 크림에 가깝게 변한 우유가 든 스테인리스 컵을 들고 있었다.
신중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그는 우유를 커피 컵에 부으며 이리저리 손을 움직였다.
라테 아트를 하는 모양이군.
지금까지 내가 받아 본 라테 아트는 하트나 나뭇잎 정도였다.
웃음기 없는 심각한 얼굴의 청년은 중간중간 멈춰가며 자기가 무엇을 더 그려야 할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커피 다 식겠네.
나는 커피 머신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그림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얼른 라테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심각한 청년의 얼굴이 긴장감에서 해방되었다.
그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나에게 라테잔을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일까?
무슨 의미를 나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청년은 자기가 지금껏 배웠던 모든 라테 아트 스킬을 이 한 잔에 총망라한 듯했다.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청년의 각진 얼굴에 미소가 환히 퍼졌다.
하트 하나만 얹어줘도 감사했을 텐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 걸 보면 청년이 이제 막 라테 아트에 재미를 붙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카페 라테 2
집 근처의 자주 가지 않는 카페에 오랜만에 들렀다.
라테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라테가 준비되었다는 바리스타의 말에 커피 컵을 받았는데 김이 팍 샜다.
아무리 종이컵이어도 이렇게 밋밋한 카페 라테는 처음 봤다.
성의도 없는 것 같고, 괜히 맛도 덜한 것 같고, 돈도 아까운 거 같았다.
나름 바리스타의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이해해 보려고 했다.
뭐라도 그리려고 시도라도 해보지 그랬어.
뭐가 됐든 시도를 한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알쏭달쏭하면 또 그런대로 시도를 하다보면 언제고 자기만의 꼴이 만들어질 것이다.
잘 안된다고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자기만의 아트를 만들 수 없게 된다.
사실 나는 브런치 2회 차이다.
재작년에 열렬히 글을 쓰다가 어느 날 깊은 수렁에 풍덩 빠져버렸다.
글쓰기가 그렇게나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모든 걸 지우고 과감하게 브런치를 떠났다.
삶의 무기 하나를 버렸더니 또 다른 색의 무의미가 찾아왔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 또 작가로 선정이 되었다.
환생한 기분이다.
두 번이나 한 번에 작가로 선정이 되었다. 분명히 나의 글에서 어떤 가능성이나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나만 모르는.
다시 작가가 되었지만 글이 써지지 않았다.
몇 개의 글을 썼다가 또 지우고 말았다.
라테 아트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텅 빈 라테를 보고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야지.
내 카페 라테가 청년의 '시도'가 되었듯이 글쓰기를 누르고 나만의 '시도'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