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의 관계성
기억의 창조를 불러오는 사랑과 이별을 알고 있다. 그것들은 한 개인이 인생의 환희와 상처를 느끼도록 이끈다. 그러기에 빛의 파편 속에 어둠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양면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야말로 기억의 창조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한한 세월 속에서 단 하나의 운명을 망각해 버린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랑과 이별의 관계성에 대해서.
변화는 상처의 산물이다. 상처를 통해서 무의식의 잔재로 흩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귀중한 가치를 내제 한다.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자신을 사랑하는 일.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일.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는 일. 그리고 관계에서 적절한 경계선을 유지하는 방법까지. 이것들은 관계에서 획득할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타인에게 요구하고 바라던 사랑의 욕망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사건 자체로서 사랑과 이별은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난다. 그것은 오로지 운명의 힘으로만 움직인다. 모두가 사랑 앞에서 이별이라는 비참함을 경험한다. 그때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의 존재 가치를 멋대로 설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관계는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삶은 사랑으로 진행되지만 이별 후에 대상의 소멸은 더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삶이 무기력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사건은 지나가기에 우리는 과거를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바로 회상이다. 다시 사랑했던 기억 속으로. 이 글을 쓰기 전·후에도 너와 나누었던 대화의 파편과 사랑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게 만든 너의 손길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다.
행복했다. 이보다 고마움을 전달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삶의 가능성을 일깨워준 사람은 너였다. 작은 가방 안에 가득했던 소장품이 조금이나마 너를 느끼도록 만들었다. 하루의 일상을 일기장에 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던 네 모습을 통해 나의 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준 것은 바로 너였다. 그리고 이 모든 습관들이 여전히 내 삶에 물들어 있다.
이처럼 내가 사랑과 이별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상처를 느끼는 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운명의 힘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너와 나누던 추억의 아름다움을 애정하는 일이었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타인을 찾아 헤매는 일을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모두가 사랑과 이별 앞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그것이 환희와 상처의 양면성이라고 할지라도 찾아 헤매는 일이야말로 내게 생각하는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사랑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을 순간,
그대를 찾기 시작했다네…
그래서 제목을 그레이로맨틱으로 결정했다. 회색빛 안갯속에서 ‘삶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젊은 이들을 위한 글이다. 나는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과 또 위로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사랑과 이별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과거·현재·미래에도 지속될 예정이다. 내가 애정하는 이들의 삶이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