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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땅히 가져야 할 부란 무엇인가

작은 삶이 내게 준 가장 큰 부

by Remi

제주에 와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하루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도시에서는 흘려보내기 바빴던 시간들이 이곳에선 유난히 또렷하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천천히 지는 해, 낯선 이와 나누는 짧은 인사까지도 하루를 채우는 감각이 된다. 그런 순간마다 문득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진짜 부(富)란 무엇일까?


그 질문의 갈피를 잡는 데 작은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 있다. 바로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다. 이 책에는 부(富)라는 단어를 돈이나 물질로만 좁게 이해해 왔던 생각에 조용히 균열을 내는 문장들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일이 아니라
삶이라고 여기면
그때부터 돈이 저절로 따라온다.


일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여길 때 우리는 쉽게 지치고 일상은 공허해지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하루의 노동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면 그 수고는 더 이상 소진이 아닌 충전이 된다. 그것은 제주의 느린 삶 속에서 내가 조금씩 체험하고 있는 변화이기도 하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해서 생긴 피로가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든 피로다.
힘이 드는 데 기분이 좋아지는
피로의 정체는 바로 자발적 피로다.



이 구절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억지로 버텨야 했던 퇴근길, 말없이 견뎌야 했던 회의 시간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수고의 대가들. 그와는 결이 다른 피로가 있다면 그건 아마 내가 선택한 일을 할 때 느끼는 피로일 것이다. 조금은 힘들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기쁨을 느끼는 것. 제주살이의 불편함 속에서도 내가 자유를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좋은 독서를
통해 뇌에 좋은 기억을 쌓아주면 돈이 따라온다.



눈에 보이는 돈은 금세 사라질 수 있지만 좋은 문장, 깊은 생각,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지금 제주에 있는 나처럼 소박하게 살아가는 시간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읽고, 쓰는 시간은 무언가를 생산하는 가장 깊고 단단한 방식이 된다.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내 삶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행위다.

이 말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부’를 물질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던 나에게 고전 속 문장은 정신적인 부를 쌓아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 책에서 독서가 단순한 취미나 시간이 가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선택을 바꾸며 나아가 진정한 부를 쌓는 힘이 된다고 강조하는 부분은 마치 밝은 등불처럼 내 삶을 비추었다.



책을 통해 쌓은 지혜는 내 사고를 바꾸고 그 변화된 사고는 삶에 대한 태도까지 바꿔놓는다. 이렇게 정신적인 자산을 쌓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 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이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닌 삶을 변화시키는 실천의 열쇠가 된다.


제주의 삶에서 소비는 금세 흩어지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은 내 안에 머문다. 결국 진짜 부는 지갑이 아니라 머릿속과 마음속에 쌓이는 것이며 그 힘이야말로 삶을 단단히 지탱해 주는 자산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배운다.


제주에서의 삶은 단순하지만 깊다. 내가 선택한 삶으로서의 일을 붙잡으며 자발적인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고 소비보다 생산에 마음을 쏟는 지금 이 시간은 분명 또 다른 의미의 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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