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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온을 오래 지키는 법, 마음의 기술

마음을 다스리는 법

by Remi

제주에서의 삶은 나를 다독여준다. 바람이 창문을 스칠 때, 아이들이 모래사장에서 웃음을 터뜨릴 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이 잔잔히 가라앉는 걸 느낀다. 도시에서 늘 당연하던 긴장과 불안은 이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에는 낯설 만큼 편안했다. “이렇게까지 평온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무렵 집어 든 책이 있었다. 《마음의 기술》



책은 시작부터 명료하게 말한다. “뇌를 이해하면 마음이 보인다.” 마음은 잡히지 않는 감정의 덩어리가 아니라 뇌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것이다.

기쁨도, 불안도, 분노도 모두 뇌의 신호였다. 그 사실을 알자 내 감정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평온함조차 뇌가 보내는 귀한 선물이구나 싶었다.



저자는 스트레스를 ‘편도체라는 뇌의 위협 감지 장치가 과도하게 켜진 상태’라고 정의한다. 원래는 맹수를 피해야 하는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장치인데 현대사회에서는 시험, 인간관계, 끝나지 않는 집안일 같은 사소한 상황에서도 뇌가 위협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몸은 늘 긴장하고 집중력은 흐트러지며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낸다.


제주에 와서 내가 평온을 느끼는 건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아마도 뇌가 진짜로 쉴 수 있는 환경에 놓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람, 파도, 낯설지 않은 이웃들의 인사. 뇌가 더 이상 위협을 감지하지 않으니 마음도 자연스럽게 안정되는 것이었다.



책은 또 하나 중요한 주제, 번아웃을 다루었다.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뇌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 도파민 보상회로가 무뎌져서 아무리 노력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고 작은 즐거움조차 뇌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더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뇌를 쉬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시에 살던 시절, 나는 바로 그런 번아웃을 겪었던 적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허했고 아이들과 웃으면서도 웃음 뒤에 공허가 남았다. 그건 나의 게으름이 아니라 뇌가 과부하에 걸린 신호였던 것이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그와 정반대다. 뇌가 휴식하고 회복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으니 작은 기쁨조차 크게 다가온다. 아이들과 일상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글을 쓰며 단어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 뇌가 선물처럼 보내주는 도파민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음의 기술》은 내게 단순히 어려운 시기를 버티는 방법이 아니라 평온할 때 이 평온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까지 알려주었다.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이건 뇌의 과잉 반응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번아웃이 다가올 때 “이제는 뇌가 회복을 필요로 한다”라고 일깨워주는 것.


제주에서 나는 매일 배우고 있다. 마음은 뇌가 보내는 신호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신호를 존중하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마음의 기술》은 결국 감정의 기술 그리고 삶의 기술을 내게 가르쳐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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