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후기

스포일러 포함 개인 아카이빙

by 일반화학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후기 (스포일러 포함)

부제: Come and get your love!



히어로물의 가장 큰 매력은 어쩌면 인물들이 겪은 상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얻는 걸 보는데서 오는 쾌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상실을 겪지 않는 사람이 없음에도 우리에게 인과응보, 권선징악에 의거하여 적절한 보상이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웅 서사에서 상실을 겪은 주인공 영웅이 되어 걸맞은 보상을 거머쥔다. 전통적인 히어로물에서 그 보상이라는 것은, 남성 히어로가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형식이 보편적이다. 허나 23세기에 이런 구세대적 보상은 시대착오적이고 구리게 느껴진다. 특히나 한 편의 영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를 사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되게 만드는 시리즈물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결말이 주는 의의는 무엇인가? 피터 퀼은 1편에서 가족을 잃었고, 2편에서는 양아버지와 친아버지를 잃었으며, 3편에서는 내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고 자조한다. 그런 남자에게 가모라를 '돌려'주었던 것이 엔드게임의 방식이었다면 그 가모라에게 거절당한 피터 퀼은 어떻게 행복해지는가?

평행 세계의 가모라는 스타 로드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시절의 가모라다. 엔드게임은 스타로드에게서 가모라를 박탈했고 돌려준 적이 없다. '너는 뭐가 두려워서 나를 네가 알던 가모라로 만들려고 애쓰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논조였다) 라는 대사처럼 둘은 다른 사람이다. 피터 퀼이 사랑했던 가모라는 이미 죽었다. 이건 인정해야만 한다. 엔드게임 이후로 등장하는 가모라는 다른 사람이다. 심지어 그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아니라 라바저스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살아온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설령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그의 세계는 점차 스며들어 내 것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 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처음으로 들어 보게 되면서, 한 사람이 일궈내어 내게 가져다 준 세계로서 고립되어 있던 나의 독립적인 세계는 점차로 확장된다. 비단 연인에 한해서가 아니라 친구와 어울리면서도 같은 방식으로 내 세계가 확장된다. 당연히, 그 사람의 온건한 세계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관계는 발전할 수 없다. 평행세계의 가모라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녀에게 제가 알던 사람을 구하는 피터 퀼과 평행세계의 가모라는 처음부터 어긋났던 셈이다.


그러나 결말부에서 가모라는 그에게 "우리 엄청 좋았겠다." 라고 말한다. 그녀는 다른 가모라와 피터 퀼이 보낸 시간을 인정한다. 어쩌면 그녀 역시도 피터 퀼에게 반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신과 다른 평행세계의 가모라가 그를 왜 좋아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피터 퀼의 대답.

"말도 못하지."

그리고 둘은 그대로 헤어진다.


평행세계에서 온 가모라도 그루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과 제법 유대를 쌓았지만, 그녀는 이전의 가모라처럼 그곳에 남는 대신 새로운 가족인 라바저스에게로 돌아간다. 세계는 어긋났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였던 가모라는 죽었다. 평행세계의 가모라는 가디언즈가 아닌 이들에게서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 그녀는 피터 퀼이 사랑했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 피터 퀼은 드디어 인정한다.

피터 퀼은 그래서 가모라를 잃어버렸는가? 그의 말대로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 그를 떠나갔는가? 뭐, 맞는 말일수도 있다. 그가 사랑했던 가모라는 죽었고, 욘두도 죽었고 그에게 소중했던 많은 이들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모라가 그를 떠났는가? 욘두가 그를 떠났던가? 상실은 끝장나게 외롭고 죽을만큼 아프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만큼 괴로워 마음 속 온전히 남은 나만의 것인 그들과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도 힘들다. 우습게도 그 정신적 공허를 회복할 때에서야 마침내 그 시간과 추억을 되돌려 받을 수가 있다.

한 번 겪은 상실은 되돌릴 수 없다. 물리적 상실감은 영원하다. 하지만 피터 퀼에게는 그의 남은 가족인 할아버지가 있으며, 그가 상실에서 회복하기를 기다려 주는 가족과 같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있다. 그러니까 요지는 그거다.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받을 필요는 없다'

이미 겪은 상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상실의 아픔을 회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상실한 대상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아내와 어린 딸을 잃어버린 드랙스는 애비 같지도 않은 부모 아래서 자란 맨티스를 딸처럼 대한다. 결말부에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맨티스를 보며 드랙스는 딸을 독립시키는 아버지처럼 눈물짓는다. 절대 춤을 추지 않는 '드랙스 더 디스트로이어'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에게서 구출해 온 수많은 아이들 앞에서 그들을 위해 춤을 춘다. 드랙스는 아버지가 됐다. 아내를 돌려받지도, 죽은 딸이 돌아오지도 않았으나 그는 다시 아버지가 된다. 전통적인 정상가족의 형태를 초월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가족관은 가족을 잃어버린 드랙스의 상실을, 맨티스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아버지의 사랑을 보상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은 죽음을 감수하고 로켓에게 심어져 있던 코드를 해제한다. 그리하여 로켓은 새로운 친구들 덕택에 살아남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던 하이 에볼루셔너리를 다시 마주하고, 도망치는 대신 맞서 싸운다. 그리고 라일라와 티프스, 플로어는 아니지만 다른 실험체들을 구출함으로서 뿌리깊이 남아 있던 고통을 극복해 낸다. 타노스의 딸들은 그들을 고문하고 학대하던 타노스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토니 스타크에게서 부성애를 맛보았던 네뷸라처럼 스타카르는 가모라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다. 가모라를 잃어버리고 슬픔에 빠져 있던 피터 퀼은 마침내 새로운 가모라가 제가 알던 그녀가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슬픔에 빠지는 대신, 남은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를 찾아 지구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중에서 상실한 대상을 온전하게 돌려받은 이가 있는가? 여전히 로켓은 라일라를 그리워하며, 드랙스의 마음 속에 아내와 딸은 깊은 상처로 남아 있고, 네뷸라와 가모라가 살아있는 한 그들은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피터 퀼은 사랑하던 연인을 잃었다. 그럼에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행복하게 끝이 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는 불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른 행복을 찾았기 때문이다. 예상치도 않은 방식으로, 상상도 못한 상대에게서.

그리하여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불합리한 인생에서, 누구 못지않게 험난하고 고단한 삶에서 그들은 행복해진다. 어쩌면 그리하여 그들은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비현실적인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나는 이 점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감독이 다한 히어로 영화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엔드게임이 해내지 못한, 클리셰를 비튼답시고 외면한 그 히어로 시리즈물의 가장 기본적인 근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