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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예 Apr 17. 2020

4. 침대 위의 남자

마치 동굴 같은


내과 인턴을 돌 당시에 중환자실에 장기 입원했던 환자분 한 명이 있었다. 그의 재원일수는 1000일이 넘어 나의 윗 학번과 그 윗윗 학번까지도 그의 욕창을 보지 못한 자가 없었다. 우리는 그를 친근하게도 "**이형"이라고 불렀다. 


우리 병원의 인턴 숙소는 6인 1실이었는데, 하루 24시간과 삼시 세 끼를 같이 하면서 도저히 안 친해질래야 안 친해질 수가 없는 구조였다.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옆 친구의 핸드폰이 언제쯤 울릴 것 같다, 간호사 말투를 보니 어느 병동일 것 같다, 라는 자잘한 것들까지도 서로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내과 인턴들끼리 같은 방을 쓸 때는 새벽녘에 코드블루(심정지 환자가 있어 CPR, 즉 심폐소생술이 시행되니 병동으로 오라는 뜻)가 뜨면 코를 골며 자다가도 좀비들처럼 일제히 일어나 크록스를 구겨 신고 뛰쳐나가는 명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서로 크록스를 바꿔 신는 것도 예삿일이었는데, 나중에는 그런 것쯤이야 전혀 일도 아닌 듯 짝짝이 신발을 신고 돌아와 신발 주인이 누워 있는 침대 맡에 얌전히 크록스를 벗어두고는 했다.


내과 인턴은 총 6명이었는데, 내가 돌 당시에는 인원이 4명밖에 되지 않았다. 두 명이 그전에 도망갔기 때문이다. 인턴 일을 하다 도망가는 경우는 꽤나 흔했는데, 1-2일 간 잠적했다가 주변 친구들의 연락 공세로 돌아오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연락 두절이 되었다. 그러고 나면 그 친구가 돌 예정이었던 과는 인원 공백인 채로 나머지 사람들이 그 사람 분의 나눠서 해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불합리하고 대책 없다 싶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고 들 에너지나 여유도 없어서,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 다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나는 1.5인분의 일을 하기 위해서 중환자실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보통 주치의들이 급하게 오더를 내리는 ABGA(동맥혈 채혈), blood culture(균 배양을 위한 정맥 채혈) 등을  하다 보면 드레싱은 마지막 순서가 된다. 나는 그날도 밀려드는 콜들을 해결한 뒤 초콜릿 음료를 쪽쪽 빨며 인턴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 날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물도 마시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어느새 외과 중환자실에 있던 친구가 뒤따라나와 내 어깨를 탁 쳤다. 내가 반가워할 새도 없이, 문을 빠져나가는 내 등 뒤로 간호사가 외쳤다.


"인턴 선생님~ ***님 욕창 드레싱 하셔야 돼요~"


아 맞다. 나는 친구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한 번 보낸 뒤 스테이션에 준비된 드레싱 세트를 가지러 돌아섰다. 친구가 다시 한번 어깨를 탁 치며 속삭였다.


"**이형 잘해드려라"


내가 그를 처음 마주하였을 때 그는 마치 날 때부터 그 침대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제 다리로 땅을 디딘 적이 없는 것처럼 고요하게 시트 위에 놓여 있었다. 한 낮임에도 그의 두 눈은 이미 밤을 보듯이 어두워 시선을 잃은 듯했다. 


그가 내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그의 당뇨발에 베타딘을 치덕치덕 바른 거즈를 덧대는 나의 손길이 느껴질까.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삼교대를 하는 간호사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같은 드레싱에 한숨을 내쉬는 인턴들이 한 달마다 바뀌는 것을 보면서. 바로 앞자리의 환자가 심정지가 나고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땀을 뻘뻘 흘리며 가슴을 미친 듯이 찍어 누르는 그 급박한 순간에도 그는 마치 '침대 위의 남자' 혹은 그 비슷한 제목의 그림처럼 그 자리에서 눈만 꿈벅였다.


그의 욕창은 마치 동굴처럼 깊었다. 실제로 우리는 그곳을 동굴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당직 때마다 그곳에 고개를 처박고 거즈를 밀어 넣었다. 나는 가끔, 그곳에 그의 모든 절망 덩어리들이 함께 밀려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드레싱을 마무리하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 나는 그가 생명 덩어리처럼 느껴져 안쓰러웠다.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고 나서 얼마 후, 나는 그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절망스러웠다. 왜 뒷목이 찌릿할 정도로 소름이 끼쳤는지 모를 일이었다. 단지 나는 말없이 누워 있는 그의 욕창에 베타딘 거즈를 채워 넣어주었던 인턴이었을 뿐인데. 그러나 나는 분명한 슬픔을 느끼면서 중환자실 재원 환자 리스트를 살폈다. 없었다. 항상 당연한 듯 환자 리스트 맨 마지막에 자리했던 이름이.


그의 환자 번호를 치자 사망환자라는 싸인이 떴다.


다시 말해, 그는 더 이상 내가 궁금해할 필요도 없이, 누군가를 느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분명하고도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죽음이란 결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는 허무했다.


어쩌면 그는 1000일 동안이나, 이런 마지막 만을 위해 욕창 속으로 온갖 수치심과 존엄과 그런 비스무리한 것들 모두를 구겨 넣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죽음은 고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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