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네상수 Jul 29. 2020

제주 미술관, 본태뮤지엄

집에서 보는 갤러리

제주에 왔다. 아름다운 섬에서 무엇으로 하루를 보낼까,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지는 해를 보며 해안 산책로를 걷는 상상을 했다. 자연이 빚어낸 천혜의 경관을 보러 간다는 뻔한 마음이지만 뻔하게 아름다운 것이 뻔하던가, 제주에 위치한 미술관을 여럿 가보기로 마음도 먹었다.

도심과 동떨어져 있고 자연 속에 숨어 있어도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둥 욕먹을 일 없는 제주의 미술관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을 두들기며 본태뮤지엄으로 향했다.


대가 없이 펼쳐진 산, 바다, 바람이 미술 작품보다 예술 같은 제주에서 돈을 지불하고 미술관을 왔다.


2만 원이라는 입장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두 편 볼 수 있고,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시집을 두 권 사고도 커피값이 남는 금액이거늘, 제주까지 와서 실망감으로 끝날 수 있는 전시 관람으로 하루를 보낸다?

보통과 다름없는 삶을 예술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나에게는 그마저도 좋겠지만, 무료 혹은 부담 없는 금액로 잘 차려진 전시를 제공하는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이 기준이고 취향인 사람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우리나라처럼 문화예술을 향한 발전, 그리고 소비가 빠르게 이루어진 나라가 없을 텐데 가성비라는 단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가. 적지도 크지도 않은 금액에 비교되는 취향들이 아른거린다. 이런저런 생각은 뒤로하고 본태뮤지엄을 후기한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좋은 예감이 든다. 모두가 가성비라는 단어는 문화예술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낄 것 같다. 



제주도 대지에 순응하는 전통과 현대를 컨셉으로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매표소에서 입장과 간단한 안내를 받은 후 풍경을 고정시킨 노출 콘크리트 사이로 매끈하고 아름답게 흐르는 빛과 물을 따라 5전시관으로 향했다.


관람시간

월~일, 공휴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대중교통이용

공항1번출구 600번 승차 - 중문관광단지입구(여미지식물원 앞 하차) - 택시 이용 - 본태뮤지엄


5 전시관은 삶의 정서가 깃든 불교미술의 매력이라는 주제로 어려움 속에서 보전되어온 불교 유물들을 통해 한국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시대 이후 문화의 흐름 속 불교 미술의 발전을 스르륵 볼 수 있다. 전시관의 중심에는 제임스 터렐의 독립된 작품 공간이 있다.

4 전시관은 전통상례, 저 세상으로 가게 해 주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행차를 도와주는 상여와 이를 장식하는 꼭두, 용마루, 용수판 등이 전시되어 있다.

5,4 전시관이 박물관에 온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면 3 전시관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전시를 이어간다. 본태뮤지엄을 검색하면 더러 나오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3 전시관은 호박뿐만 아니라 무한 거울의 방이라는 체험 작품이 있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숭유억불(崇儒抑佛) - 유교를 높이고 불교를 억누르다

상례(喪禮) - 사람이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예법

상여(喪輿) - 초상 때 시체를 장지로 운반하는 제구

james turrell - orca, blue

빛과 공간 미술 운동의 선두 주자 제임스 터렐의 초기 작업 Orca, Blue는 통제된 두 개의 빛을 공간의 반대쪽에 비추어 빛이 공간을 점유하게 만든다. 공간 스스로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며 공간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인지심리학을 전공했다는 작가의 작품은 시각 자극을 박탈했을 때 환각을 보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 용어인 간츠펠트 효과를 경험함으로써 관람자의 감각과 현실감을 의심하게 한다고 한다.


안내에 따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좁은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이 있는 방이 나온다. 15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관람객 나름의 노력이 필요했던 작품

쿠사마 야요이 - 무한 거울의 방

"예술가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벽면을 타고 끊임없이 증식해가는 하얀 좁쌀 같은 것들을 벽에서 끄집어내어 스케치북에 옮겨 확인하고 싶었다." - 쿠사마 야요이


https://www.youtube.com/watch?v=_GXPTcadaGg 쿠사마 야요이에 대해 다뤘던 영상도 슬쩍

쿠사마 야요이 - 호박

‘본태(本態)’란 본연의 모습이란 뜻으로 인류의 문화적 소산에 담겨진 본래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기 위해 2012년 천혜의 환경 제주도에 설립되었습니다.로 시작해 건축가 안도 타다오, 본태박물관의 설립의지를 간략하게 설명하며 2 전시관이 시작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신박함과 전시관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생각하니 가장 좋았던 전시관이라 생각된다. 헤벌레 하다가 사진을 잘 찍지 못한 것은 여러모로 아쉽다. 최정화, 백남준, 로버트 인디애나, 달리 등 빠지면 아쉬울 작가들의 작품이 더러 있고 본태뮤지엄의 구조, 설계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신발을 주섬주섬 챙겼다. 카페에서는 휴대폰이며 지갑이며 던져놓고 화장실도 잘 다녀오는데 어딜 가든 신발은 왜 항상 잃어버릴까 불안한지 모르겠다. 전통담장길 옆으로 흐르는 물길에 다시 마음을 뺏긴 채 따라 걸었다. 이번에는 동영상을 찍어대느라 사진을 찍지 못했다...

1 전시관은 아름다움을 찾아서, 전통문화에 담긴 아름다움을 현대와 다시 소통하고자 한다는 전시관이다. 소박함과 화려함, 단정함과 파격을 동시에 담고 있는 수공예품이라는 설명이 좋았다. 그리고 여성들의 외출이 제한되었던 시대상 때문에 꽃과 새, 곤충 등의 문양 등을 새긴 장과 농을 통해서 자연의 분위기를 대신 느꼈다는 설명에는 조금 슬펐다.

비즈의 유행은 돌고도는 것과 베갯모 아카이빙 자연의 빛을 활용한 전시공간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매표소로 돌아가는 길, 들어오던 길에서 더 낮은 시선으로 물길을 따라 걷는다. 아름다워 죽겠다.


본태뮤지엄을 후기해야지 마음먹고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분명 비장했는데 막상 글을 끝내려 하니 허무한 기분이다. 작품들도 작품이지만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더 매료된 기분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국공립 미술관과 사립 미술관의 차이 중에 가장 생각나는 것 또한 어디에, 누가 건축하였을까? 이기도 하고, 국가의 현대미술에 대한 척도를 보여주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의 뛰어난 건축가가 아닌 외국인이 설계하였다고 하면 조금 슬프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사립 미술관이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건축물을 보러 온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미술관에는 예술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이 형태로 나타나는 공간은 그저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놈의 2만 원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며


ps. 가고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을 쓴다는 거 어려운 건 알았지만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것도 이리 힘들어서야

매거진의 이전글 일민미술관 - 새일꾼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