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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네상수 Jan 25. 2021

대구미술관  <정재규 - 빛의 숨쉬기>

집에서 보는 갤러리

'그럼 어떤 전시를 좋아하세요?'

아직 잘 모르겠다.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더 많은 취향인지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지 않는 전시는 아마도 사진전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해 클릭 몇 번이면 노트북에 가득 채워지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있기에 사진전에 굳이 발걸음 하지 않았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현장감의 중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최정화의 카발라를 보기 위해 찾은 대구미술관 2층에서는 두 개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었고 브런치에 쓸 사진들을 담기 위해 발걸음과 손은 분주해졌다.


조형사진, 조형적으로 아주 다른 사진과 기하학적 회화의 두 측면을 연결한 작업이다. 무슨 물건이든 사인과 날짜를 명기하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뒤샹의 ready-made개념을 선호하는 작가는 모든 사진 이미지 또한 어떤 기법, 작가의 개입에 의해 조형사진이 될 수 있다고 재해석한다. 사진의 기술적인 측면과 아날로그적인 올짜기, 기법의 장인적 측면이 만나는 것이 정재규의 조형사진이다.


사람도 사진도 첫인상이 참 중요하다. 전시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사진전을 보며 발걸음 떼기 아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장르의 구분은 오히려 예술의 한계를 정해버리는 짓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맞다. 예술은 그런 거였지 숭고하고 웅장하고 아름답다. 앞으로는 '좋은 전시를 좋아해요.' 말해야겠다.


조형사진 / Plastic Photography


"사진이미지에 입력된 과거 순간의 빛과 전시장의 현재 순간의 빛이 서로 조응하고 이러한 조응이 올짜진 표면 구조로부터 투사되어 관람객의 시신경을 자극하는 빛의 순간의 현실장이 곧 3차원적 공간 지각 체험 순간에 해당된다. 이 순간은 대상으로서의 빛(올짜진 사진)과 관객이 그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전시장의 빛이 관객의 시신경에서 합일화되는 '빛의 신체화'이자 '신체가 빛이 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 정재규 작가노트 中


아치1, 2004, photo, chinese ink, foam board/cutting
아치2, 2004, photo, chinese ink, foam board/cutting
HM53/ 연, 코트다쥐르1, 코트다쥐르2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1989-07-22), 1990, photo, foam board/cutting

조형사진의 시작점, 폴 세잔이 그렸던 모습과는 다른 생트 빅투아르 산의 뒷모습을 촬영한 뒤 사진이미지를 자르고 상하 방향을 바꾸어 같은 자리에 배치하는 조형작업을 통해 탄생했다고 한다. 빛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빛은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색채를 통해 묘사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세잔의 말이 생각났다.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1989-07-22), 1994, photo, foam board/cutting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1989-07-22), 1994, photo, panel/cutting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1989-07-22), 1994, photo, panel/cutting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1989-07-22), 2002, photo, wood/relief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1989-07-22), 2002, photo, wood/relief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1989-07-22), 2002, photo, wood/relief
아치 아틀리에 - 진오, 2004, photo, craft paper/weaving

2002년 아치 아틀리에로 이주하며 작가의 올짜기 기법이 시작됐다고 한다. 사진의 시공간이 교차하며 빛이 만들어진다. 빛으로 만난다. 숨 막히는 디테일

Man Ray(1924) 1, Man Ray(1930) 2, 3, 4
Man Ray(1924)1, Man Ray(1930)2, 3, 4, photo, chinese ink, craft paper/collage weaving
경주 남산1,2, 3, 4, 2008, photo/cutting, collage
경주 남산, 2008, photo/cutting, collage
경주 불국사 극락전, 1994 , photo, panel/cutting
경주 불국사 석가탑, 1994, photo, panel/cutting
경주'94 불국사 무두석불, 1996, photo, wood, stick, mobile

사진 이미지를 잘라서 나무 막대기 세면에 각각 서로 다른 이미지를 붙인 작업이다. 움직이면 변화하는 이미지, 일반적으로 모든 기계적 이미지들은 관람객들의 시선, 위치가 고정되어지기를 요구하기에 관람객은 수동적이게 된다. 반대로 이 작품에서는 기계적 이미지, 3차원 착시를 지각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선택하게 되는 작품이다.

경주 연, 2020, photo, craft paper on canvas/weaving, collage
경주 불국사 다보탑, 2020, photo, craft paper on canvas/weaving, collage
경주 석굴암 불상, 2020, photo, craft paper on canvas/weaving, collage
경주 불국사 극락전2, 2020, photo, craft paper on canvas/weaving, collage

자세히 보면 도려낸 하얀 선이 가늘게 나타나 있다. 사진이미지를 관통하는 이 수직선은 극락전 앞의 석등을 통해 보이는 아미타불의 향불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디테일에 숨이 막힌다.

경주 불국사 극락전1, 2020, photo, craft paper on canvas/weaving, collage
HM53/정원/연, 1997, photo, panel/cutting, Variable installation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2014, photo, chinese ink, craft paper/weaving

올짜기와 운필기법(붓을 한숨에 휘두르는)이 어우러진 동양의 정신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는 현재라고 한다. 고국을 떠나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왠지 그리움이 담긴 작업들을 결국 하는 것 같다. 그 시대 작가들의 특징이려나, 동양 정신에 입각. 김환기가 생각난다.


조형 사진가의 아틀리에: / 벽, 바닥, 시간


"프랑스 파리의 Issy-les-Moulineaux의 아치 아틀리에를 그대로 재현했다. 이 공간에서는 물리적 작업환경을 재현하는 한편 아틀리에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격자무늬로 배열했다. 올짜기 작품을 촬영한 사진이미지의 격자 배열은 자기유사성을 가진다."


실제 정재규 작가의 작업실이 담긴 전시 공간을 마지막으로 끝마쳤다. 미술관에서는 관람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미술관을 나서며 카발라의 팸플릿을 하나 더 챙겼었다. 그럼에도 정재규의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진이라는 단어가 주는 친밀감 때문인지 예술가의 창조력, 천재성에만 눈길을 줬었기 때문인지 사진이라는 예술의 매체에 무지했던 것 같다. 무지는 병이다. <빛의 숨쉬기>로 고쳤으니 다행이다. 입체를 담은 평면, 기계적 이미지와의 대화, 기하학적 이미지 대한 생각... 어려운 생각들이 쏟아진다. 전시 관람의 순기능 중 하나라 생각한다. '향유하세요, 향유하자'는 전시에서는 못했던 향유를 했다. 좋은 관람이었다.


ps. 조형사진을 담은 사진이 새삼 멋스럽다. 새삼 대구미술관도 참 외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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