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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문신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by Renaissance

Bullying이라는 명확한 표현이 있는 것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괴롭힘' 말고는 딱히 단어가 없다. '왕따'는 따돌림을 지칭하는 단어로 괴롭히는 것이 포함된 포괄적인 단어다. 따돌림이 아닌 괴롭힘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하니 단어가 마땅치가 않다. 전 지구적으로 행해지는 남에게 가해지는 위해에 대한 얘기다.


어렸을때 매우 유약하고 순진한 아이였다. 그에 반해 몸은 컸다. 중학교 2학년때까지 주변에 나보다 큰 동년배가 없었다. 소아비만에 키까지 컸으니 괴롭힘을 당할 풍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인간은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인간에게 아무렇지 않게 위해를 가한다. 나는 덩치만 컸을뿐, 누군가 욕을 하거나 툭툭 건드려도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하지 않았으니 정도는 심해질 뿐이다. 처음 건드렸을때 화를 내거나 똑같이 대응해줘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싸움 잘하는 찐따 라고나 할까. 쌓이고 쌓이다 1년에 한번 정도 터지면 잘못 걸린 한 명은 박살이 난다. 아마 억울했을 것이다. 자기만 괴롭힌게 아닌데 왜 하필 자기가 박살이 나야했는지. 그런일이 있고나면 한동안 잠잠하다. 아무도 날 건들지 않는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나는 싸움꾼이었다. 맨날 상대 부모에게 사과만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누군가 나를 괴롭힌다고 부모님께 이르지도 않았다. 그저 싸움의 이유를 항상 '상대방이 먼저 도발해서 어쩔 수 없었다' 정도로 변명했을 뿐이다.


고등학교를 외국 가게 되면서 부모님이 나에게 약속하라고 했던 것은 단 한가지였다. '싸우지 말라'였다. 공부를 잘 해라도 아니고, 언어를 잘 배우라 도 아니고, 그저 싸우지만 말아달라고 하셨다. 이유는 명확했다. 한국은 싸워도 넘어가주지만, 서양권 국가는 싸우면 학교에서 쫓겨난다. 봐주고 이런거 없다. 체벌이 없는 대신, 처벌이 명확했다. 그래서 학교를 무사히 졸업만 해달라는게 부모님의 부탁이었다. 아시아인이 별로 없는 나라였고, 나는 다른 아시아인에 비해 덩치가 컸으며, 외모적으로 튀었다. 학교는 오히려 괜찮았다. 내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많았으니까. 문제는 일상이었다. 버스, 지하철, 길거리 에서 정말 예상치 못한 불링을 당했다. 너무 미세한 것들이라 문제삼기 뭐한 것들. 툭 치고 지나가는데 사과를 하지 않는다던가, 나를 보고 비웃음을 터뜨린다던가. 분명 나를 보고 웃는게 명확한데 가서 뭐라고 따지기 힘든 정도로만. 사춘기 시절 꾸준히 쌓인 이 피해의식은 나를 변모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아무도 날 건드릴 수 없게끔 만들고 싶었다.


몸부터 키웠다. 중학교 이후로 키가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에 근육을 키웠다. 머리스타일은 점점 화려해져갔으며 수염도 길렀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피해갈 법한 인상의 그런 사람이 되었다. 전략은 주효했다. 사람들은 나와 가까워지면 알아서 어깨를 피했으며, 아무도 나를 보고 웃지 않았고, 시비가 붙어도 상대방이 먼저 사과했다. 지긋지긋한 마이크로 불링과 결별하고 살아온지 20년이 되었다. 다시 시작될거라 생각지 못했다. 이제 끝난줄 알았다.


다시 어깨를 치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건 꽤 되었다. 내가 점점 만만한 사람이 되어가는 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젠 대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생겼다. 내가 외모에 별다른 변화를 준게 아닌데 왜 이럴까 생각을 해보면 노화로 인해 피부가 얇아지고 눈꼬리도 처져서 유해보이나 짐작만 할 뿐이다. 세상엔 미친사람들이 참 많다. 미친사람들도 피해갈 정도로 강인하게 생기면 그런 사람이 적어보이는데, 만만해지는 순간 참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할머니가 대놓고 나를 겨냥해 외모 비하를 시전했다. 예전이면 쳐다보는 순간 시비는 끝나는데, 이젠 쳐다봐도 아무런 위협감도 주지 못했다. 나는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유학시절이 떠올랐다. 상대가 나에게 시비를 걸어도 부모님과의 약속으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자리를 뜰 수 밖에 없던 그 무력감. 실제로 심하게 싸우면 퇴학 뿐 아니라 추방까지 당할 수 있었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그 억울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무력감을 다시 느끼게 된 건 나이와 함께 오는 사회적 지위였다. 나에게 대놓고 비하 발언을 하는 할머니에게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겠는가. 경찰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이런 시비들이 잦아지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문신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문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좋지 않다. 여기에도 사대주의는 존재하는데, 다른 인종의 경우 패션의 하나로 받아들여주면서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매우 엄격하다. 내가 좋아하는 문신 스타일은 명확하고, 이레즈미나 페이스타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걸 하는 사람의 심리는 이해한다. 실제로 이레즈미로 몸을 덮은 사람과 대화를 길게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이유였다. 이레즈미를 한 이후로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직 페이스타투를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혐오스럽다, 불쾌하다 등 페이스타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지만, 그 만큼 페이스타투를 하는 사람에게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 타투를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것일 뿐. 나는 그저 노화를 받아들이고 시비에 익숙해지고자 할 것이다. 노화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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