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운인데 실패는 재능인가
이탈리아 카나니아대 연구진의 성공과 운에 대한 연구가 2022년 이그노벨상 경제학상을 받았다. 재능이 가장 많은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평균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 중에 운이 좋은 사람이 가장 성공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재능이 아니라 운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의 주변만 보아도 가장 실력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부를 차지한다던가, 가장 많은 명예를 얻게 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예술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성과대로 보상이 이루어질 것 같은 운동 분야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재능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부상을 당해서 기회를 놓친다던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사건에 휘말려 커리어를 마감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다. 올림픽 메달이 경력의 최고지점인 스포츠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전성기 시절에 올림픽을 갈 수 없을 확률도 높고, 룰이 바뀌어서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도 금메달을 못 따는 경우도 많다. 성공에 있어 운은 절대적인 요인이고, 우리는 은연중에 모두 그것을 안다. 그렇다면 왜 실패는 자기 탓을 하는가.
남탓 하는 것을 싫어한다. 결과를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지 그것을 남탓으로 돌리면 성장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의 모든 성공은 운이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실패는 오롯이 내 탓이라고 하는건 너무 가혹한 처사다.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대학에 가서 동기들끼리 장난으로 넌 그머리로 여기 어떻게 왔냐는 농담을 할때, 나는 진지하게 운으로 왔다고 대답했다. 남들이 운으로 대학왔냐고 농담하면 실제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의 성공은 운이라고 서스럼없이 얘기했다. 1년에 100명도 뽑지 않는 산업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 들어갔을 때에도 나는 스스로 운이 따랐다고 생각했다. 내 실력으로 못 들어갈 회사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나보다 실력이 있음에도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었다. 대학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그 안에 있어보면 그런 확신은 더 커진다. 나보다 형편없는 실력을 가지고도 여기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그들이 여기 들어와 있는 것이 운인 것처럼, 나도 운이 좋아 이곳에 있는 것이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영화 대학원에 갔을 때에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고, 독립장편 투자를 받았을 때에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닌 것 같다. 맨날 더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 채찍질 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도 있지만, 큰 성공을 거두면 내가 잘나서 이룬 성공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뭔가 내 능력보다 더 과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랄까. 내 가장 근원적 불안이 '사실 알고보면 나는 별것 아니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라고 다른 글에서 이미 밝힌 적이 있다.
다음 영화를 못하고 있고 취직을 알아보고 있는데 서류를 넣으면 떨어지고 새로 지원할 만한 회사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내 스스로의 선택과 재능을 탓한다. 내가 그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내가 좀 더 천재였더라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지 않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성공은 운이면서 왜 내 실패는 오롯이 내 탓을 하고 있는건가. 단지 난 운이 없었던 거라고 가볍게 털어내면 안 되는 걸까? 언젠가 나에게 운이 와주길 바라면서 현재를 버티는 것 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정신적으로 덜 피폐해지고 싶다. 위통, 불면증, 콜레스트롤 모두 스트레스의 영향이 크다는데 좀 덜 받았으면 싶다. 남탓을 하자. 그 남이라는 건 운이다. 이건 오로지 운 때문이다. 나는 운이 없었다. 영화를 완성하고 바로 코로나가 터졌고, 개봉하고 이틀만에 극장이 문을 닫았고, 제작사들이 신규 아이템을 찾으러 다니지 않았다. 현재도 신인 감독을 찾는 제작사와 투자사는 없다. 내가 운이 없었다.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운이 올지 안 올지 모르겠지만 운이 와 준다면 나는 영화를 하는 것이고, 안 따라준다면 다른 일을 하면 된다. 그러니 조금만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갖자. 나의 성공이 운 때문인듯이, 내 실패도 운 때문이다. 당신도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