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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Jan 20. 2021

'정인이 법'이 충분해질 기회

제2 정인이 법을 기대하며

올해 1월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16개월 학대 여자 어린이의 사연이 방송됐고, 그로부터 엿새 후인 1월 8일 국회는 이른바 ‘정인이 법’으로 통칭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정인이 법' 주요 내용]
● 아동학대 신고 시 즉각적인 수사 착수 의무화
● 경찰관/전담 공무원은 가해자와 피해 아동 분리 조사
● 전담 공무원 및 경찰관의 아동학대 관련 교육 의무화
● 피해 아동 응급조치 기간을 3일->5일로 연장 등


 '신속성' 강조했던 정인이 법


관련 법안을 6일 만에 통과시켜서 더 좋아진 점도 분명, 있을 겁니다.

 법안으로 인해 피해 아동이 한 명이라도 더,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학대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 국회가 신속하게 법을 통과시켰던 이유도 이런 기대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최적의 대안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었을까?라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엿새라는 시간은, 우리가 그동안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것을 하지 않았단  보여주는 데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이제, 문제는 '정합성'


1월 8일 국회를 통과한 정인이 법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여전히 많습니다. 


정인이 사례에서 경찰은 아동학대 신고가 두 번이나 들어갔는데도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고 경찰의 판단을 본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경찰 핑계를 대며 '아동학대가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입양기관은 정인이에 대한 학대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정인이가 이 세상을 떠나기 까지, 경찰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의사, 입양기관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서 그 놓친 부분을 매울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1월 2일 이후 또 다른 정인이 법 23건 발의돼


1월 2일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후 현재(1월 19일)까지 모두 23건의 <아동복지법>,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 개정안이 나왔는데요.  이 법안들이 '구멍'을 매울 수 있을까요? 


당 별로 보면 민주당 소속 의원이 15건,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5건, 무소속 의원이 3건을 발의했습니다. 주로, 아동 정책을 다루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었습니다.   

      

내용별로는 우선, 아동학대 발생을 막기 위해 학대 행위자의 형량을 높이고 아동학대 신고자에게 권한과 의무를 더 부여해서 아동학대가 의심되는데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상황을 막자는 내용의 발의안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부산 연제구를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은 아동학대치사죄의 경우 '5년 이상 징역'에서 '10년 이상 징역'으로,  아동학대중상해죄는 현재 '3년 이상 징역'에서 '7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걸로 법정형을 상향하는 법안을 냈습니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


형량을 높이는 방안의 경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형량이 세지면 검찰이 범죄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도 커지기 때문에 입증에 자신이 없을 경우 아예 기소를 포기해버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법안 검토 과정에서도 부작용에 대한 검토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의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확충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발의했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과 함께 현장에 출동하고 있는데 지금은 지자체 두 곳당 하나만 설치돼도 되게 돼 있습니다. 이 의원은 지자체별로 하나씩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학대 아동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서구 갑 강선우 의원


우선, <아동학대 전담 의료기관 지정 의무화>를 정하고 있습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 전담 의료기관을 지정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는데 의무 규정이 아니다 보니 전담 의료기관은 전국에 한 곳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걸 의무화시키자는 게 강 의원의 제안입니다.      


정인이에 대해 어떤 의사는 “학대다”라고 했지만 다른 의사는 “학대가 아니”라고 했고 이 의사 말을 듣고 경찰은 수사를 종결해버렸죠. 전담 의료기관이 생기면 의료진들의 전문성, 진단의 정확성이 높아질 걸로 기대됩니다.   

   

강 의원은 또 <아동 쉼터 예산 확보를 위한 아동복지기금 신설> 안도 냈습니다. 쉼터는 학대 아동들이 부모로부터 분리돼 지낼 수 있어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전국에 70여 곳 밖에 없어서 확충이 시급한데요. 아동학대 피해자를 돕는 재원이 현재는 법무부 범죄피해자 보호기금과 기획재정부의 복권기금에서 나오고 있는데, 두 기금을 '아동복지기금'으로 통합해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도록 하자는 거죠.  이렇게 되면 중복 지원 등을 막아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경기 화성시병 권칠승 의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부모와 분리돼 아동학대 쉼터에서 지내던 아동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 이후의 상황에 집중했습니다.


지금도 이른바 ‘사후 관리’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규정은 없는데, 권 의원은 사후 가정 방문 주기나 관리 내용을 보건복지부가 구체적으로 정해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권 의원은 오늘(20일)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 후임으로 지명이 됐는데 그래도 이 법안은 제2 정인이 법 논의 과정에 함께 다뤄지면 좋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입양 이후' 시간에 집중해, '입양 이후' 관리의 주체를 입양기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규정하고 아동학대 의심이 있는 경우는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했습니다. 같은 당 양경숙 의원은 입양 부모가 전문적인 심리검사를 받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정도 법안이면 제2의 정인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충분할까요? 

 

국민들의 큰 분노만큼, 지난 8일 통과된 정인이 법에 대해 큰 아쉬움을 가진,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가진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더 늘어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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