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포주의)
두 개의 교실이 있다. 하나는 학계로부터의 도피처, 다른 하나는 스스로 선택한 종착지. 과거 지구에서 주인공 그레이스가 머물던 중학교 교실은 가르침의 숭고함을 고려했다기 보단 둔세의 방편에 가까웠다. 학계의 냉소와 비판, 그 질곡들을 견디지 못한 그는, 스스로를 평범함이라는 휘장 뒤에 은폐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에 답하며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선택한 비겁한 정적이었으며 타격 없는 삶이 주는 거세된 평화였다. 도망쳐 도착한 그곳은 그에게 안식처인 동시에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도 했다.
주인공의 수동적 태도는 우주선 '헤일메리호'에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순간에도 이어진다. 그는 자신이 인류를 구할 영웅이라 믿었으나, 실상 그 실체는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스트라트의 사의적인 계획에 의해 배치된 기자에 불과했다. 인류 멸망을 막아야 한다는 거대한 명분 아래, 그는 자신의 의지가 박탈된 채 광활한 우주라는 장기판으로 송출된 '익스펜더블'이었다. <위대한 쇼맨>의 바넘이 상류사회의 인정을 갈구하며 화려한 무대 뒤로 자신의 본질을 숨겼듯, 그레이스 역시 타인이 설계한 영웅 서사 속에서 입력된 지식의 기계적 응답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타인이 닦아놓은 궤도를 충실히 구르는 유능한 도구였을 뿐이다.
그러나 기억의 돌아오는 순간, 근사해 보이던 겉모습 뒤에 숨겨진 초라한 민낯이 드러난다. 죽음이 두려워 비명을 지르며 임무를 거부하다 강제로 기절당해 실려 온 겁쟁이, 그것이 그의 본모습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절망은 타인이 설계한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 효시가 된다. 바넘이 잿더미가 된 서커스장 위에서 비로소 자신이 지켜야 할 단원들을 마주했듯, 그레이스 역시 무너진 자존감의 파편 위에서 독자적인 의지를 길어 올리기 시작한다. 가짜 영웅으로 사느니, 차라리 고결한 인간으로 죽겠다는 결단은 지구라는 확고한 안정을 향하던 기수를 돌려 사멸해 가는 외계 동료를 향해 나아가는 회항으로 이어진다.
이 눈부신 단행은 물리적 생존 본능과 종족 보존의 법칙을 거스르는 비합리적 선택이지만, 그가 더 이상 누군가의 장기말이 아닌 자기 삶의 주재자로 거듭났음을 선언하는 의식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안락한 귀환이 보장된 길은 누구나 갈 수 있으나, 자신의 생존을 대가로 지불하고 걷는 길은 오직 주체성을 가진 인간만이 가능하다. 화려한 극장의 박수 소리를 뒤로하고 남루한 천막 아래 소외된 이들의 손을 잡았던 바넘의 선택처럼, 그레이스는 추앙받는 복귀 대신 고립된 헌신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 에리드 행성에서의 가르침은 과거 지구에서의 그것과 궤를 달리한다.
실패를 은닉하기 위한 도피처였던 교실은 이제 자신의 생존권을 내던지고 얻어낸 전유의 공간이 되었다. 글쎄, 누군가는 그가 인류의 영광을 포기하고 외딴곳에 유배되었다고 말할지 모르나, 스스로 기수를 돌려 도착한 그곳에서 그는 비로소 행복을 마주한다. 남이 정해준 정답이 아닌, 내가 선택한 오답이 주는 충만함이다. 나의 삶 또한 지금 주체적인 행복을 향한 진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이 설계한 안락한 장기판을 벗어나 나만의 서커스장을 일구는 과정은 언제나 두렵고 고독하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증명했듯, 진정한 승리는 목적지의 화려함이 아니라 조종간을 쥔 내 손의 확신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이 막막한 우주 한가운데서, 나는 이제 나의 기수를 돌리려 한다. 떨리는 손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명확하고 명징한 의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