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글에서 성공을 발견하는 법
어린 시절 나는 이야기 쓰는 걸 좋아하는 꼬마였다.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나는 글쓰기에서 두 개의 세계를 경험했다. 하나는 생각과 상상의 표현이 마냥 즐겁던 자유의 세계였다. 그러다 발을 옮기게 된 두 번째 세계는 ‘성공’한 글이 따로 있는 곳. 타인의 평가에 따라 상이 주어지는 그런 세계였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는 학교를 대표해 논술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매일 스파르타식으로 글짓기 연습을 시켰다. 학교에 남아 ‘불조심을 하자. 물을 아껴 쓰자’와 같은 주제의 글을 꾸역꾸역 써야 했다. 틀에 박힌 글을 쓰는 게 너무 지겨워 몇 번인가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친구들과 놀러 가버렸다.
다음 날 화가 나신 선생님은 나를 불러 혼을 내며 말했다.
“아무튼 너 이번에 상 못 타 오면 알아서 해!”
굳은 표정과 싸늘하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압박감을 등에 업고 대회에 나갔던 나는 결국 상을 타지 못했다. 혼이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내게는 글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생겼던 것 같다. 누군가가 보기에 정답이 아닌 글, 상을 받지 못한 글은 실패작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성공하지 못하면 스스로가 창피해졌다. 글쓰기의 천진한 즐거움은 점점 옅어졌고, 흰 종이를 보면 막막하고 울렁거렸다. 잘 못쓸 것 같으면 아예 쓰지 않았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을 테니까.
그 날의 아이는 그럭저럭 잊혔다.
그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백지가 두려웠다.
시간을 돌고 돌아 현재의 나는 어린이들의 독서와 글쓰기를 돕는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기억 속의 어린 나를 함께 만난다. 얼마 전, 수업에 처음 온 아이가 내 곁에 쪼르르 와서 조심스레 귓속말을 했다.
“제가 글을 잘 못 쓴 거면 어떡해요? 애들이 보고 이상하다고 놀리면 어떡해요?”
열 살 무렵의 이 아이는 앞으로 수많은 불완전한 글을 쓸 터였다. 아이에게 편협한 실패의 기준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훗날 스스로 성공의 기준을 찾게 되기를 바라며 말해주었다.
“잘 쓰고 못 쓰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글에는 정답이 없는걸.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그건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수업에서 한 팀이 된 예닐곱 명의 초등학생들은 매주 삐뚤빼뚤 글을 써온다. 돌아가며 발표를 한 후 하는 일은 바로 ‘천사의 눈으로 친구의 글 칭찬하기’이다. 서로의 글 속에서 멋지고 좋았던 부분들을 발견하고 북돋아주는 일이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곧잘 작은 성공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웃긴 단어, 내 생각과 달라서 재미있는 표현, 뿐만 아니라 글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마음과 발표해준 용기까지 모두 반짝이는 성공들이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아이의 글은 온통 고치고 싶은 오류투성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잘못은 물론이고 주제를 벗어난 내용, 문맥에 맞지 않는 표현이 난무한다. 그런 것들만 눈에 띌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무엇이 성공일까? 이 아이가 이루어낸 것은 무엇일까? 그러면 신기하게도 글의 고유한 매력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발견한 성공들을 알려주면, 아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놀랍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글을 제일 먼저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완벽하지 않은 글이라도, 모든 글은 자신의 색깔을 담고 있기에 세상 단 하나뿐인 성공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실패’의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답이 없기에 생각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오가며 길을 헤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열 살이든, 여든 살이든 글 쓸 때만큼은 홀로 고독한 생각의 길을 걸어야 한다. 스스로 그 여정을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의미 있는 성공이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수많은 어른들도 이 아이들만큼 용기 있게 실패할 수 있다면, 작은 성공들을 무수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에서의 실패와 성공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닮아있다.
어느 면을 뒤집어 보느냐의 문제일 뿐, 결국 글을 쓸 때마다 같은 가치의 동전이 쌓인다.
동전의 이름은 즐거움, 자유, 여유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치유이기도 하다.
백지가 두려워질 때마다, 나도 실패한 글을 즐겁게 쓰는 아이들의 용기를 본받아본다.
‘오늘도 쓴다는 것에 성공했어!’라고 말하며 슬며시 부족한 글의 동전을 뒤집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