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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l 26. 2023

모모는 결국 어른이 되었다

시간적금상품을 파는 회색신사의 마케팅

모든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모모는 결국 어른이 되었다.

그가 만났던 회색신사들에 대한 기억도 모두 흐려졌다. 모든 어른들이 그렇듯, 모모도 신사들의 존재를 잊어갔다.


회색신사들은 모모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결국 그들은 더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모모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모는 곧 모두 잊었다.


기기와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법.

시간을 앞서가던 카시오페아의 마법까지도.



회색신사들은 모모의 시간을 가져가버렸다.

모모는 이제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카시오페아의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모모는 시간을 아껴쓰고 싶었다. 모든 어른들이 그렇듯.

모모는 시간을 아끼고 아껴 저축해두었다.


회색신사들은 대놓고 모모를 자주 찾아왔다.


-이번엔 아주 좋은 시간적금상품이 나왔습니다.


-꼭 쓰고싶었던 시간일수록 우리는 더 높은 이율을 보장합니다.


-오랫동안 넣어둘수록 더 높은 이자를 보실 수 있을겁니다.



회색신사는 다리를 꼬고 말했다. 그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어디서 교육이라고 받은듯 당당한 태도였다. 그의 말솜씨는 잘 닦아놓은 그의 구두만큼이나


매끄러웠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탁탁, 치며 말했다.



삶을 사는 동안 만기가 없고 따라서 사실상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매끄러운 말솜씨 어딘가에 스리슬쩍 섞어두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게 된 모모에게도 잘 기억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모모는 오래된 꿈을 저축했다. 묵혀두고 묵혀두었다가, 먼 미래에 다시 찾을 계획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꿈과 시간이 이런식으로 시간은행으로 흘러들어왔다. 대체로 그 시간들엔 꿈이 섞여있었는데 그 모든 꿈들은 시간 속에서 점차 낡고 빛을 잃어갔다. 대체로 오랜 기간이 흘러 시간을 되찾은 이들은 어쩐지 눈물을 흘렸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시간을 넣어두지 않았다.


시간은 저축할 수 없다는 걸, 그들의 사기행각을 일치감치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회색신사들이 말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성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토록 오랫동안 과거와 미래라는 허상을 오로지 가치있는 현재를 탈탈 털어낼 수 있는지, 그 마케팅 실력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숨조차 제대로 못쉬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미래를 살거나 과거를 바라보느라, 현재를 모두 은행에 털어넣어버렸다.


깊은 숨을 쉴 시간도 사라져버린 그들은,  시간이 점점 사라져 결국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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