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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11. 2023

초면인 열네 명이 남산을 걸을 때 생기는 일

‘어색해 죽겠다, 괜히 왔다’의 순간과 밤의 피크닉


열네 명이 모여 한 밤의 남산을 걸었다. 우린 모두 초면이다. 연휴에 신청한 남산 트래킹 모임에서 만난 사이다.

걸어야 하는데 동기가 필요해서, 걷고는 싶은데 혼자는 외로워서, 긴 길을 힘내서 함께 걸을 동지가 필요해서. 어차피 걷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와 닮은 듯한 이러저러한 ‘걷는 이유’로 사람들은 모였을 것이다.      


초면인 사람들이 약속 장소에 잔뜩 모여있었다. 어색한 눈빛과 무표정과 미소들.

내겐 이런 순간이 힘들다. 마침내 ‘어색해 죽겠다, 괜히 왔다’의 순간이 도래한 거다.

모임의 주최자는 어색해하는 우리를 둥그렇게 둘러 세우고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시켰다. 다행스럽게 저기, 왼쪽부터 시작이다. 이름, 사는 곳 정도만 말하면 되는데 나는 어째서 심장이 울렁거리는가. 내가 속한 이 거대한(사실은 작은) 원의 한 점을 내가 차지하고 있다. 반대편 너머의 점에 선 사람에게까지 내 목소리가 잘 들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내뱉어야 하는 내 목소리가 알아서 크기를 조절해 줄지 남몰래 삐걱거리게 된다.      


‘선생님 저는 발표가 떨려요. 너무너무 떨려요.’

어르고 달래도 발표가 긴장된다고 달달 떨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살면서 발표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거야. 도와줄 테니 우리 천천히 연습해 보자.”

내가 아이한테 건넸던 그 말들이 떠오른다. 대체 누구한테 하는 말이었던가.

하지만 역시 맞는 말이긴 하다. 발표를 하지 않고선 내가 누군지조차 드러낼 수가 없다. 

아이들 앞에서 가르칠 때에도, 가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별로 안 떨리는데, 낯선 동그라미의 점이 되어 내 이름을 이야기하는 건 어째서 떨리는가. 매일 말하는 일을 하면서도 어째서 이런 순간엔 내 목소리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조차 안 되는가. 왜 내 목소리의 모양과 크기를 까먹어버리는가. 여전히 의문이다.  

   

소박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주최자는 우리를 조별로 나누어 움직이게 했다. 

우리 조 사람들은 나 빼고 세 명이다. 한 남자는 키가 크고 멀끔하게 생겼다. 슬림한 체형에 위아래 운동복을 갖춰 입었다. 그는 어차피 운동할 거 여기서 하려고 신청했다고 쿨하게 말한다. 

다른 남자는 둥글둥글한 인상이다. 반가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편안하다. 나머지 한 명은 단발머리에 뽀얀 피부, 웃는 모습이 예쁘고 귀여운 여자이다. 

그렇게 열네 명은 남산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이야기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내용들은 세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호구조사 같은 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때때로 침묵이 흐르기도 하고 그걸 참을 수 없는 누군가가 또다시 질문을 던진다. 소리와 침묵이 왔다 갔다 하면서 어색했다 편안했다를 반복한다.     

 

한참을 걷다 보면 앞서가는 사람, 속도를 늦춰 뒤로 가는 사람이 생긴다. 그럼 또 새로 옆에 서게 된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맨 뒤에 설 때도 있었고 가장 앞에 설 때도 있었다. 어디 섰는지에 상관없이 그냥 밤의 시공간을 걷는 것만으로도 외롭다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도착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걸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 좋은 길은 오랜만이었다. 어딘가에 꼭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우리 조 사투리 남자는 엉뚱한 질문과 동문서답으로 사람들을 자주 웃게 했다. 정형화된 정답을 말하는 사람보다는 자유롭고 따듯한 느낌의 사람이 나를 훨씬 편안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를 종종 놀렸다. 놀리는 게 재밌어서 자주 그렇게 했다. 나는 무용한 장난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걷는 길목에선 야경도 봤다. 그런 풍경 속에서 누군가를 각 잡고 알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어쩌다 보니 알게 된다는 것도 좋았다. 사람과 만나는 데에 자연스러운 상황과 충분한 시간이 내겐 중요하단 것도 깨달았다. 걸으면서 곁에 서게 된 사람들을 보다 보니 어쩐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보게 됐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온다 리쿠의 소설 <밤의 피크닉>이 떠올랐다.

거기선 밤을 따라 걷고 또 걷는 고교생들이 나왔던 것 같다.

대학생일 때 청계천에서 왕십리까지 하염없이 걸었던 어떤 여름밤, 현실판 밤의 피크닉도 떠올랐다. 책의 내용도, 여름밤의 대화도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둘 다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저 걷는다는 건 살아가는 과정을 온전히 누리는 것만 같은, 배부른 마음을 준다.      


두 시간 정도 남산을 그렇게 배부른 마음으로 걸었다. 어쩐지 어둡지만은 않은 어둠 속을 걸었고 시원한 가을 공기 속도 걸었다. 사람들 사이로도 걸었다. 계속 걷다 보니까 마음에 빈 곳이 안 느껴졌다. 지난 며칠간 느꼈던 진한 외로움과 슬픔도 없이 자주 웃었다.      


어떤 길이든 걸어가야 한다는 씩씩한 마음을 먹게 됐다. 그래야 둘러싼 풍경도 바뀌고 같이 걸을 사람들도 생긴다. 

어두운 밤이어도 나는 걸을 수 있다. 밤이어도 웃을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 물론 영영 함께할 수 있는 건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시시껄렁한 농담이랑 장난 같은 걸로 마음을 채워가면서 계속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밤을 만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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