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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20. 2020

이름을 자꾸 불러댔다

어르신께서 혹시 옛날에 선생님이셨어요?


“저기... 어르신께서 혹시 옛날에 선생님이셨어요?”

간병해주시는 분이  난감해하며 물었다.


.. 어떻게 아셨어요? “ 
새벽에 깨서는 출석을 부르셨어요. 영철이도 부르시고...”

새벽에 출석 부르느라 피곤해서인지, 약기운 때문이지 병실의 할머니는 잠에서  깨질 못하고 있었다. 신생아처럼 자꾸만 잠을 자는 할머니를 깨우려고 피구왕 통키 동요를 틀어놓고 이어폰을 귀에 꼽아주었다. 할머니! . 장선생님! . 선생님! . 두드려 깨우며 여러 번 불렀다 할머니의 이름들을.

과거 기억의 파편들이 현재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더는 새로운 기억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현재의 우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과거를 사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대화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리고 누구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쉽사리   없었고.


할머니는 그저.. 사진첩을 뒤적이듯 지나온 삶에서 원하는 순간을 펼쳐놓고, 곧잘  순간을 살았다. 인간은  생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역할극을 펼치게 되는 걸까. 할머니가 펼친, 여기저기 기워 놓은 헌 양말 같은 역할들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때로는 선생님이 되었다가, 그래서 영철이의 이름을 불렀다가, 동요를 부르는 앳된 아가씨로 돌아갔다가, 할머니가 되었다가. 그러니까 할머니는 여행 중인 모양이었다. 아기의 몸으로 돌아가 그간 살아온  여기저기를 여행 다니는 중인  같았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까르르 웃었다.  생을 품고 한없이 맑아져만 가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만큼의 이름으로, 불려 왔을까. 할머니는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할까. 어떤 이름을 가지고, 할머니는 눈을 뜨고 싶을까?

호명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부른다는 , 그리고 거기에 응답을 듣는다는   사람이 여기 존재한다는 의미다.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했다. 활짝  꽃이든 시든 꽃이든  무엇이 되었든 나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 장선생님,   떠봐,   깨봐.
, 이라는 말을 자꾸만 듣고 싶어서 나는  잠에  할머니를 자꾸만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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