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의견은 언제나 정당화 되는가?

다수결의 정당성과 헌법적 한계에 대한 고찰

by 정현석변호사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2015



0. 개요


근래 의과대학 정원의 한시적 확대에 관하여 의료계의 반응이 거세다.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의료인력의 배출을 증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주된 사유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공의와 개원의를 중심으로 집단 휴가 또는 집단 휴진 등의 방법을 통해 집단의사를 전달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볼 때 시민들의 반응이 그리 우호적인 것는 같지는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집단 감염사태가 있을 경우 공공의료기관의 기능이 중요하고 현재 의료인력 공급상태로는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는 판데믹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공익적 목적에 따라 정부가 의사 수를 증원하겠다는데, 의사들은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데 대한민국 사회가 유독 의사들에게만 너무 가혹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는 많은 기준이 있을 수 있겠으나, 본인이 전문지식을 기초로 전달할 수 있는 의견은 법률 분야에 한정된다 할 것으로 보이므로, 이하 순수한 법적관점에서 바라본 생각을 개진해보고자 한다.



1. 다수결의 필요성과 헌법적 한계


대한민국에는 5천만 명의 국민이 있으며 개별 국민은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정책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국민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그 의사를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할 것이나, 개별 국민의 의사가 모두 뜻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사회는 개인의사를 반영하되 일정한 절차를 통하여 하나의 '단체의사'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바, 대표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다수결'에 따른 의사결정 절차인 것이다.


다만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이 언제나 결과적 타당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할 것인바, 이는 단체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불가피한 시스템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퀴즈쇼 1대100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신청하는 힌트 중 100인의 답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과연 실체적 정의(justice)가 다수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는 것인지, 만일 다수가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면 실체적 정의(justice)를 판단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지(혹은 과연 이에 관하여 종국적 판단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실체적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 또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면 반드시 따라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는 것인지 등에 관하여는 누구도 쉽게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사회에서의 의사결정은 다수에 의한 판단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국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고, 의견을 교류하고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며, 소수로 하여금 다수를 설득시킬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부여된 경우에 한하여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우리 헌법재판소의 태도이므로 참고할 만하다.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의 하나인 다수결의 원리는 의사형성과정에서 소수파에게 토론에 참가하여 다수파의 견해를 비판하고 반대의견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여 다수파와 소수파가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거쳐 다수의 의사로 결정한다는 데 그 정당성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과정에서 소수파에게 출석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토론과정을 거치지 아니한 채 다수파만으로 단독 처리하는 것은 다수결의 원리에 의한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헌재 2010. 12. 28. 2008헌라7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등 간의 권한쟁의)."



2. 다수결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요건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 볼 때 다수결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참여자의 실질적 평등 : 동등한 권한, 동등한 토론의 기회, 토론과정의 공개가 보장될 것

2) 의사결정 과정의 합리성 : 참여자의 합리적 판단능력이 전제되어야 하며, 개인적 이해관계는 배제할 것

3) 다수의 교체가능성 : 다수자의 교체가능성이 차단되어서는 안되며, 의사결정과정이 특정집단에 의하여 독점되어서는 암됨

4) 의안의 변경가능성 : 제한된 선택지만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만 결정이 이루어지면 안됨

5) 소수에 대한 배려 : 다수에 의한 결정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수를 배제하거나 군림해서는 안되며, 소수를 위한 대안적 정책 등의 배려가 필요함


3.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민주주의적 절차를 지켜야 한다.


금번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확대 정책이 과연 옳은 것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가 없기에 본인으로서는 해당 정책의 당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자격과 자질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 해당 정책이 결과적으로 옳은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자 한다. 그러나 해당 정책의 결과적 당위성을 떠나 그 정책의 수립과정에 비추어 볼 때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충실히 지켰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정이 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선거에 의하여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부 또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정책을 입안함에 있어 특정 집단에 불이익한 사회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해당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이해관계자에게 그 정책의 목적과 수단 그리고 효과를 사전에 공개하고 토론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정책의 탄력성과 개방성을 확보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라는 점에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비록 이러한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정책의 효율성과 신속성이 희생되거나, 혹은 장시간의 토론과 정쟁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동일한 결론에 이름으로써 시간적 손실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 의사결정에 비로소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 할 것이며 반대했던 국민도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할 당위성이 부여된다고 본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온 민주주의(democracy)의 본질이다.


군부 독재정치로 참혹하게 얼룩졌던 근현대사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암흑시절로 평가되는 이유는 그들이 수립하여 집행했던 정책이 결과적으로 옳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국민의 의사가 아닌 집권자들의 정치적 신념만으로 이끌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비록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은 정부 또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위와 같이 민주주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그저 결과적 당위성만을 내세워 정책을 강행한다면 이른바 '민주적 독재'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근래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흔들리는 가운데 신속한 입법과 정책입안을 통하여 지지율을 반등시키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띄며 한편으로 그 마음이 이해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부디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궁극적 방향이 옳다면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없는 토론과 설득으로 차근차근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순리에 부합한다. 5천만명의 국민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대한민국 사회는 정부의 의지만으로 단시간 내에 바뀔 수 없다. 비록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강한 법적제재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자발적인 수용의지가 없다면 그 질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겨운 설득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옳다. 아울러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면승부는 대화와 토론이며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부디 대한민국 정부가 조급한 마음을 내려 놓고 정면승부를 해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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