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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석변호사 Feb 15. 2022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위원 활동기

나는 소송을 권하지 않는 변호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비상임감정위원으로 근무한지도 어느새 4년째다. 며칠 전 3년 단위의 임기가 한번 더 갱신되었으니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 3년간 감정위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감정업무는 생각보다 고된 측면이 있다. 각 사건마다 검토해야 할 진료기록의 양이 방대하고, 일단 감정부회의를 하기 전까지는 다른 감정위원의 소견을 조회할 수 없기 때문에 사건의 흐름을 혼자의 힘으로 읽어내고 법적책임의 단서를 찾아내야 하기에 많은 지적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감정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중재원에 직접 방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데, 그에 비하여 지급되는 수수료는 사건당 8만원 수준인지라 오직 채산성으로만 본다면 그다지 효율적인 업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위원으로 활동했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다양한 유형의 분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해당 분쟁에 관련된 깊은 수준의 실무적 의학지식을 학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의료분쟁 추세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어떠한 해결책이 당사자에게 진정 이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는바, 감정위원으로 활동했던 시간은 내가 의료분쟁을 처리하는 변호사로서 성장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기회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감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의료분쟁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도 상당히 변화하였는데, 종래 의료분쟁의 한쪽 편에 서서 사건을 수평적으로 바라보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검토대상 의료분쟁에서 한발짝 물러분쟁 당사자 모두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내려다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달까?

 

의료분쟁의 당사자가 사건에 관한 검토의견을 조회하기 위하여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고 검토결과 법적책임이 인정될만한 사안일 경우 변호사는 일단 의뢰인에게 법적대응을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의뢰인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소송 외 다른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의료분쟁의 경우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는 법적책임 인정 여부를 확언하기 어려운 사안이 많, 법적책임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다른 불법행위 사건에 비하여 손해배상액이 낮게 인정되는 반면 소송비용은 더 많이 지출되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의료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하여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이유로 근래에 이르러서는 사건검토를 의뢰하는 많은 의뢰인들에게 소송을 권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실정인데, 이는 내가 소송업무를 하기 싫어서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았을 때 소송이 아닌 합의절차 또는 조정절차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시간적, 경제적, 감정적으로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굳이 소송을 권하는 사례를 꼽자면, 1) 이미 충분한 합의절차 또는 조정절차를 진행하였음에도 성과가 없었던 경우, 2) 합의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될 사정이 있는 경우, 3) 법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측이 전혀 분쟁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 등인데, 근래 의료기관들의 인식도 예전과 달리 의료사고에 대한 피해회복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바, 3)의 사례는 많지 않고 1) 또는 2)의 경우가 그나마 소송을 권하는 사례다.


아이러니 하게도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소송을 권하지 않다보니 통장잔고가 그다지 여유롭지 않다. 그렇지만 내 통장잔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뢰인에게 불필요한 소송을 권할 생각은 없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면기난부'라는 말이 있다. 변호사는 가난을 면하기 쉽지만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변호사들 사이에서 '면기난부'는 주로 부자가 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현하는데 사용는 것으로 보이나, 이를 달리 해석하면 '비록 부자가 되기는 어려워도 가난을 면할 수는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니 구태여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지 않을까?


앞으로도 '면기난부'를 믿고 내 나름의 신념을 유지할 생각이다.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옷과 음식을 대접해주지 못하는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가족들도 이해해줄 것이라 믿는다. 질서는 공존의 지혜로 유지되는 것인바, 지나친 이기심은 결국 질서를 무너트리고 무너진 질서 속에서는 누구도 평온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 문의 : 정현석 변호사 (법무법인 다우)

연락처 : 02-784-9000

이메일 : resonancelaw@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resonancelaw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정현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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