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장수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여정
- 이 이야기는 실패로 버무려진 30대 백수의 밑바닥을 탈출하기 위한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 인스타그램 : @develop_hada
이렇게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내가 지나온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제목에서 말했듯이 나는 공무원 준비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오랫동안. 27살까지 나름 열심히 살아온 나였다.
학교에서는 교내근로, 장학금 등으로 반액, 전액장학금을 받기도 했으며 학점도 괜찮았다. 그리고 간간이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를 벌면서 전공 관련 자격증도 4개나 취득했다. 그렇게 난 내가 속한 무리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사회에 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문제는 졸업을 하고 나서 취업준비를 하던 때에 시작되었다. 스펙도 어느 정도 맞춰두었고 자격증도 '이 정도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겠지.'생각하며 기업에 원서를 쓰는데 주로 이름 한 번 들어본 기업들이나 규모가 중견기업이상만 그리고 공기업위주로 지원을 했다. 그렇다. '내가 취업이 잘 됐으면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겠나.'싶다. 세게 말아먹었다. 27살 1년 동안 상, 하반기 다 합해서 약 80곳에 지원을 했고 결국 안 됐다. 뭐 물론 면접 기회도 주어지고 그랬는데 결국 안 됐다.
그렇게 실패를 맛보고 나서 자신감이 한 껏 꺾였다.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안 될 법도 했다. 대구의 그것도 지잡대 졸업해서 날고 기는 사람들이랑 같은 선상에서 경쟁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과 어렸기에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실패를 맛보고 길을 찾던 와중에 친구 하나가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말을 하곤 공시에 뛰어들었다. 나도 그 말에 솔깃하고 말았다.
그렇게 고민과 고민 끝에 부모님께 통보식으로 말씀드렸다. "엄마, 아빠 저 공무원 준비해 볼래요. 취업도 힘들고 그런데 공무원 해서 되면은 30년 넘게 평생직장으로 일할 수 있고 좋아요." 그렇게 말씀드렸고 아버지께서는 "그래 좋다. 대기업, 중견기업 이런데 가도 금방 잘린다. 공무원이 세상에서 젤 안정적이고 좋다. 나중에 연금도 나오고 한다더만" 이러시면서 찬성하셨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굳이 어려운 길 갈 필요가 있겠니? 자격증도 많이 땄고 영어학원도 다녔었고 대학교까지 나왔는데 그냥 한 번 더 취업준비 해보지."라며 살짝 걱정하셨다. 그래도 결국 부모님 앞에서 내가 "무언가를 하겠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었기에 부모님께서는 지지를 해주셨고 그 당시 모아둔 돈이 조금 있어서 바로 강의료와 교재를 구매했고 집 근처 독서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했다. 그래. 자신감이 넘쳤다. 왜냐하면 내가 도전한 공무원이 전공인 환경직렬의 공무원이었기에 과목도 겹치는 게 많았고 국어, 영어, 한국사만 공부했으면 됐다. 그래서 "1년 안에 끊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18년 6월 첫 공무원 시험인 지방직의 채용인원이 나왔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대구광역시였기에 당연히 대구광역시로 응시를 하려 했다. 채용인원이 3명이란다. 3명. 이런 미친.
채용인원을 보는 순간 욕부터 나왔다. 평소 공부하면서 그 직렬을 준비하는 인원을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보았을 때 대구광역시에 환경직렬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평균인원이 300~400명 정도 된다. 그런데 채용인원이 3명이란다. 취업준비할 때도 그 치열한 경쟁에 밀려서 겨우 다른 길을 택해서 공시생으로 왔는데 또 100:1이 넘는 경쟁이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준비를 했고,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그렇게 1년 차가 끝이 났다.
그렇게 2년 차에 접어들고 한 번 더 환경직렬에 지원을 했다. 왜냐하면 이미 공부한 양이 있었고 아직까지 전공 관련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리고 "올해는 채용인원이 많겠지."라는 희망에 '못 먹어도 고'인 심정으로 다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아 맞다. "앞에서 공무원 준비를 한다던 친구는 어떻게 됐냐고?" 그 친구는 2년 하고 합격하여 구청으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내가 1년 차에 공부를 하면서 또 다른 친구가 소방관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소방관이 인원을 엄청 많이 뽑는다는 말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주변에 점점 "공무원"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년 차 시험을 쳤다. 어떻게 됐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불합격'했다. 왜냐하면 2년 차에는 채용인원이 3명이 아니라 2명이었다. 그냥 채용인원을 보자마자 의욕이 사라졌다. 그래서 도중에 포기할까도 생각했는데 "그 2명 안에 내가 든다."라는 깡마인드로 호기롭게 쳤는데 그냥 시원하게 '불합격'이었다. 아 그리고 그 소방관을 준비하던 친구는 8개월 만에 '합격'했다. 채용인원이 100명이 넘었고 합격커트라인도 낮아서 합격을 했다. 뭔가 이때부터 자존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친구 2명이 '소방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3년 차가 접어들면서 나도 더 이상 못 참고 '소방관'으로 직렬을 바꿨다. 채용인원은 무시 못했다. 그렇게 준비를 새롭게 다짐하며 시작했다. 이렇게 내 주변에 점점 공무원과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 분위기를 타서 얼른 합격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항상 영어과목에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토익점수를 위해 학원을 다닐 때에도 영어가 매우 약한 건 알고 있었지만 공무원영어는 '공부하면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강의 듣고 하라는 대로 하고 했는데 점수가 들쑥날쑥했고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렇게 3년 차 시험을 친구들과 같이 가서 쳤다. 그렇게 결과를 기다리고 '불합격'했다. 물론 친구 2명은 합격을 했다. 이때 많이 무너졌다. 포기할 뻔했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친구는 1년 해서 붙었는데 나는 3년 가까이했는데 안 됐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3년 동안 공시생을 하였고 내 나이 30살이 되었고 장수생이 되었다. 이때부터 부모님께서도 조급하셨는지 공부는 그만하고 취업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아들이 30살이 되었는데 돈 먹는 공부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우셨나 보다. 그리고 3년 차 때는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아서 생활했었기에 죄송한 마음도 크게 들었다.
하지만 난 부모님께 '한 번만 더 해보겠다.'라고 말씀드렸고 그 대신 지원을 일절 안 받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엔 거리가 먼 독서실로 바꾸었다. 그러면 좀 더 일찍 준비해서 나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이번에는 공부시작 전에 공장과 쿠팡에서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확실히 일하고 나니까 의지가 더욱 강해졌고, 나이가 30이 되었기에 더 '성공해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정확히 기억나는 게 20년 10월부터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했다. 나도 하면서 느꼈다. 21년 시험날 시험장 앞.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항상 시험장에 들어갈 때 긴장하고 떨려서 머리가 하얘지곤 했는데, 이번엔 무난하게 시험을 쳤다. 영어과목도 생각보다 쉬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치고 나오면서 또 공무원을 준비하던 친구가 생겨서 그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도 느낌이 있었는지 "야 니 이번엔 붙겠던데? 니 느낌 좋았지?" 그 말에 "어 괜찮던데? 이번엔 뭔가 느낌 괜찮더라." 하며 좋게 나왔다. 하지만 그 기분도 가채점 전까지였다.
가채점을 하는데 쉽게 느껴졌던 영어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점하면서도 심장이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고 눈은 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채점을 하는데 점수가 50점이란다. 그래도 아직 뒤에 과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꾸역꾸역 채점했다. 그렇게 결국 또 '불합격'했다. 그냥 허탈했다. '내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 마음은 공무원을 오래 준비했던 장수생이라면 아니면 최선을 다해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싶다. 그냥 침대에 들어갔다.
그 후 한 달간 집 밖에 안 나갔다. 독서실도 안 갔다. 부모님도 내가 채점한 시험지를 보고 아쉽게 불합격이 된 걸 확인하셔서 크게 뭐라 하시진 않았다. 그래서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결론을 내렸다. 21년 6월이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저 이제 나이도 있고 신입으로 지원도 힘들 것 같고 아까운데 1년만 더 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씀드리고 A4용지에 각서도 썼다. 1년 해보고 안되면 그때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겠다고.
그렇게 21년 6월~22년 4월까지 공부를 했다. 솔직히 지겨웠다. 같은 공부를 몇 년째 하는 건지 그리고 중간중간에 소방청이 국가직으로 변경되면서 시험 치는 과목도 바뀌고 법도 개정되고 뭐 그랬다. 그런데 그건 '이걸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다 같은 사항이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공부했다. 물론, 이 때도 교정직공부하던 친구가 21년에 합격을 했다. 내 주변에 공무원이 몇 명인지 참. 이게 환경설정이 되었나 보다.
이렇게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는데 의욕이 아무래도 꺾였는지 작년만큼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생활비를 벌 목적으로 부업을 시작했다. 제휴마케팅, 티스토리블로그를 했고 수익이 간간이 나왔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 친구들이 공무원이 되고 발령을 받고 일을 하면서 월급과 연봉을 받으며 놀러도 가고 그런 모습에 나 스스로는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 스스로 "내가 바본가"하며 나의 뇌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대학교 다닐 때에는 자격증도 곧잘 취득하고 성적도 좋았고 그랬는데, 지금의 나는 왜 이러지?' 하며 생각했다.
그렇게 22년 4월 32살의 마지막 시험을 치러 갔다. 물론, 긴장과 불안으로 밤을 새우고 시험장에 갔다. 시험은 역시나 '불합격'이었다. 이제는 자포자기였다. 주변에서도 나에게 위로를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실패를 거듭했고 장수생이 되었고 결국 4년 반이라는 시간을 날리게 되었다. 그렇게 난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