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미니멀리즘 그 이후

by none
IMG_1137.jpeg 새로 산 발뮤다 리베이커 오븐


처음 시작이 언제였더라, 아마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뭔가를 사고 리뷰하는 게 좋았다. 디지털 카메라 하나를 사서 뷰티, 패션, 별의별 잡동사니까지 전부 리뷰를 했다. 그 당시에는 블로거라면 핸드폰이 아니라 디카를 써줘야 했다. 지금만큼 핸드폰 카메라의 화질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냥 그런 상징적인 게 있었다. 그 시절엔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많지 않았어서, 조금만 노력해도 몇백 명의 방문자수가 찍혔고 이웃수도 쉽게 늘었다. 그게 너무 재밌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예전부터 뭔가를 쓰고 기록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빨간색 물건에 질려하지도 않고 닳아 없어질 때까지 사용했던 것처럼.


빨간색 지갑, 빨간색 가디건, 빨간색 백팩, 빨간색 패딩, 빨간색 후드티. 나는 뭐든 쉽게 질려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것들은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사용한 것들이었다. 보풀이 심해지거나, 때가 타 더는 못 입고 못 쓸 때까지 썼다. 종종 한 번씩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간색 물건이 있는데, 그걸 사면 그렇게 애착템이 되는 식이었다. 그걸 이제서야 알았다. 내가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는 파란색이나, 보라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사놓고는 쉽게 질려했다. 나는 나를 잘 아는 편이라고 느꼈고, 그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했는데도 아직 잘 모르고 있었던 거다.


벌써 인생을 산지도 20년을 지나 30년을 향해간다. 서른이라는 게 아득해 보였고 정말 어른 같은 숫자였는데 막상 이 나이가 돼보니 그냥 시간이 흘러 나이만 먹은 나다. 스무 살 초반에는, 두세 살만 많은 사람들도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는데 이 나이쯤 돼보니 스무 살 이후로 사람 나이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할머니 할아버지도 맞먹으라면 맞먹겠다. 그 사람들의 마음도 나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은 스무 살 때 그대로인데, 몸만 늙는 거다. 그냥 야식이나 기름진 음식 좀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운동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정도. 이젠 나이를 세는 것도 까먹는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한참 생각해 보고 대답한 지가 몇 년째다. 스무 살 이후로는 그게 좀 어려워서 차라리 몇 년생인지 대답하고 만다. 그럼 상대방은 그게 몇 살이냐 묻는다. 저도 잘 몰라요, 그게 몇 살인지. 그럼 나는 그제야 다시 계산을 한다.


처음에 브런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 기뻤다. 이제 드디어 뭔가가 시작되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근데 뭐 별 거 없고 그냥 브런치에 글 끼적이게 된 내가 됐다. 초반에는 블로그도 뒷전으로 하고 브런치에 집중했다. 감사하게도 다음 메인에 뜬 적도 몇 번 있었다. 브런치의 메인 주제로 삼은 미니멀리즘을 알게 된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그럼에도 더 이상 전처럼 흥미를 느끼진 못한다. 미니멀 관련 서적을 한 달에 몇 권씩 읽지도, 매일같이 관련 글들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뭔가에 열정을 쏟다가도 식혀버리는 것. 그럼에도 모든 기억과 습관은 내 안에 남아있다. 이제 더는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함부로 사지 않고, 정리를 한다. 이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모습이다. 내가 했던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기록된다.


전처럼 힘주고 sns를 삭제하지 않아도, 핸드폰을 멀리하려고 스크린 타임을 켜거나, 억지로 전자기기들을 치워놓지 않아도 그럭저럭 할 일을 한다. 전엔 자꾸만 좋아요수나 조회수 같은 것들을 신경 쓰게 돼서 ai와 상담을 해봤다. 직후에는 알림을 보지 말라는 조언을 얻었다.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됐다. 이제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신경을 덜 쓰게 됐다.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누군가가 보상해 주는 결과보다도, 내가 쓰는 글이 어떤지 그 자체와 과정에 더 집중하게 됐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냥 내가 쓴 글이 좋았다. 그때의 감정이, 생각이 느껴지는 게.


이제는 좀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한다. 이젠 내게 정말로 행복을 주는 소비를 알게 됐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이 잡히고 있다. 쓸데없는 물건을 함부로 사는 일이 줄었고, 사고 싶은 물건을 억지로 참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비가 좀 재밌다. 그래서 전과 다른 마음으로,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 같은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궁금하시다면 놀러오세요. 이번에는 조금 오래갈지도 몰라요. 성실하진 못해도.


https://blog.naver.com/aftersilver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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