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 사이의 작은 가림막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세상이 반짝이는 이 시기는 사람을 이유 없이 들뜨게 만들곤 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거리를 걷든지 간에 귀에 들려오는 캐롤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 날이 몹시 기대되는 순간들은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공원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마음을 떠올리게 만들기 일쑤다.
기념일마다 12시가 가장 설레었다. 땡 하면 쏟아질 별들을 한 손에 다 담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기도 했었다. 온전한 하루를 즐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오히려 예민한 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생일이 그랬고, 새해가 그러했다. 그날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잘해야 돼, 행복해야 해, 많이 웃고 충만히 느껴야 해. 나는 줄을 매달고 춤추는 꼭두각시처럼 감정을 느껴왔던 것이다.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그 말이 사각 방이 되어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제는 기념일에 방방 뜨게 설레지 못한다. 감흥이 없어졌다는 말이 나에게도 왔다는 게 조금 슬프다. 그러나 정말 365일 중 조금 특별한 날이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해져 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철든 뇌를 갖게 되었을까, 스스로가 낯설기만 하다. 썰매 끄는 산타의 그림만 봐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올라오는 수많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25일을 상상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쉼 없이 변하는 내 마음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건 수 달이 흘렀지만, 두근거림을 온전히 갖지 못하게 된 건 꽤나 아쉽다.
그래도 여전히 길을 걸으며 귀에 흘러드는 소리에 빠지는 것을 좋아한다. 막혀 있어도 펼쳐져 있어도 예민한 내 귀는 휙휙 지나가는 날갯짓도 꼭 잡아내고 만다. 파동에 홀려 갑자기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이 들 때면 조금 발랄한 발걸음으로 억눌러보곤 한다. 음악과 함께 하는 아스팔트 길에선 마치 자유로운 발레리나가 된 것만 같다. 종착지까지 쉴 새 없이 코가 아려오면 뜬금없이 내릴 고요한 밤눈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낭만 있는 겨울을 꿈꾸는구나, 너무 현실적이진 않구나 싶어 안심이 된다. 내가 조금 덜 마모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염없이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 올해만큼은 꼭 하얀 이불이 온 세상을 안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당근 코에 나뭇가지 손을 가진 눈사람이 살아나게 해 달라 기도했던 어릴 적 내가 조금 덜 억울하지 않을까. 모든 일이 기적처럼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세상이 자비를 베풀기도 한다고, 그렇게 귀띔해 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