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혁 Jan 20. 2024

변태, 변태, 변태

2024년 1월 20일

1

오늘 코를 풀다가 눈알이 빠졌다.

물론 뻥이다.


2

저녁 먹고 느긋하게 밤산책을 했다. 우산을 든 손이 차가웠다. 여러번 손을 바꿔야 했다.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골목을 걷다가 오토바이에 치일 뻔 했다. 언덕에서 내려오던 오토바이는 방향을 틀면서 급정거했다.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사과하려 했는데 배달 기사는 곧바로 휙 가버렸다. 급한 일이 있나. 배달이 밀렸나. 그이도 분명 놀랐을 텐데. 나에 대한 원망과 짜증을 풀지도 못하고 바삐 가야하는 그이가 안쓰러웠다.

돌아오자마자 따뜻한 물로 씻었다. 몸이 데워지니 갑자기 코가 간지러웠다. 콧구멍 근처가 아니라 깊숙한 안쪽. 미간 근처가 우물꾸물했다. 몇 번 풀어보니 웬만한 에너지로는 안될 것 같았다. 공기를 잔뜩 끌어모아 있는 힘껏 코를 풀었다. 그러면서 상상했다. 아, 이러다가 눈알이 빠지면 어떡하지? 내가 도로 집어넣어도 될까? 얼음물에 담궈서 병원에 가야할까? 안과인가 신경과인가 외과인가? 급히 뛰쳐나가면 혹시 그이를 만나지 않을까? 그이는 쌤통이라고 여길까? 연민 때문에 원망은 접어두고 일단 뒤에 타라고 할까? 오토바이는 빠른 속도로 도로를 가로지른다. 가까운 안과를 아시나요?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신가요? 혹시 토요일 저녁에도 열려 있을까요? 아차, 그러고보니 로또를 사야하는데. 잠깐 저기 세워주실 수 있나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상상이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미 부여하거나, 서로 연결 짓거나, 이런저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 상상하는 습관이 있다. 애쓰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런다. 일종의 내장 프로세스, 혹은 시스템이다. 내 입장에서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아니,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는 말이 더 맞겠다.


3

어제 브런치를 다시 시작했다. 1월 19일이었다.

오늘은 이전에 쓴 글을 훑어봤다.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부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삭제하기 전 데이터 확보 차원에서 통계를 살폈다. 읽는 사람들의 선호가 궁금했다. 첫 번째 글의 최근 일주일 조회수는 1회다. 1월 19일 1회. 그렇군. 삭제. 다음 글을 확인했다. 두 번째 글의 최근 일주일 조회수는 1회다. 1월 19일 1회. 그렇군. 삭제. 다음 글을 확인했다. 세 번째 글의 최근 일주일 조회수는 1회다. 1월 19일 1회. 그렇군. 흐음... 그렇군.

전체 통계를 살펴봤다. 기껏해야 하루에 4, 5회던 조회수가 1월 19일만 100회에 가까웠다. 새로 쓴 글 때문인가? 아니다. 모든 글을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내 브런치에 있는 모든 글을 한 번씩 조회했다.

누굴까? 어떤 사람이 내 브런치에 들어왔을까? 왜 모든 글을 한 번씩 조회했을까? 정말로 다 읽었을까? 누르기만 했을까? 어떤 어머니가 내 브런치에 들어온 채 잠이 들었는데, 아이가 장난치다 전부 누른 건 아닐까? 혹시 어떤 순서로 클릭하면 전체 조회수가 1회 오르는 코드가 숨겨져 있나? 장난기 많은 개발자가 넣은 이스터에그인가? 정확한 방법을 알아내서 공유할까? 조회수 올리는 팁을 올리면 내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오르겠지? 나는 곧 차단될까? 브런치 쪽이 바보도 아니고. 그정도 오류는 금방 수정하겠지. 개발자는 퇴사했겠지? 그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일할 맛이 안나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런 사람이라면 친해지고 싶다. 재미있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다정한 사람이 좋다. 재미있고 다정한 사람이면 더 좋겠다. 욕심인가? 이왕 욕심부리는 거 더 하자. 똑똑하고 예쁘기로 하자. 뭐든 맛있게 잘 먹기로 하자. 재치있게 농담을 하거나 받아칠 줄 알고, 사진도 잘 찍기로 하자. 침착하지만 중요할 때는 과감할 줄 아는 사람이기로 하자. 들을 땐 잘 듣고, 해야할 말은 하는 사람이기로 하자. 때론 침묵으로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기로 하자.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사람이기로 하자.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아무튼 그이는 나를 좋아할까? 싫어할까? 아무 감정도 없을까? 내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가장 좋을까? 역시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부담스러울지 몰라. 싫어하는 게? 그럴리 없잖아. 아무 감정도 없는 게? 아무 감정도 없는데 일일이 조회하는 건 변태겠지. 나는 변태라서 같은 변태를 보면 동족혐오를 느낄테다. 하지만 변태라서 변태를 이해할지도? 변태도 변태 나름이니까. 자꾸 변태, 변태, 하니까 변태라는 말에 무덤덤해진다.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흐려진다. 그건 그리움이나 이별이나 사랑 같은 것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무언갈 계속 간절히 원하면 멀어지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 이별, 이별, 이별. 사랑, 사랑, 사랑. 아, 브런치에 이렇게 쓰면 아무도 안 읽을텐데. 좀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그렇지만 뭐, 어차피 하루에 네다섯명 밖에 안 읽는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람. 역시 나는 글로 먹고 살긴 글렀어.

까지 상상하고 그만뒀다.


4

물론 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복잡하고 단순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