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고향이 충청도냐고 물었다. 동료는 커피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더니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아니, 내가 몇 번을 얘기한지 알아요?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앗, 그랬어요?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냐구요. 얘기해주면 뭐해. 또 잊어버릴텐데.
미안, 미안. 이번엔 정말 기억할게요.
서울이에요!
그녀의 고향은 충청도가 아니라 서울이다. 그리고 오빠가 나랑 동갑이다.
혼나니까 기억이 난다. 서울... 오빠가 동갑...
그런데 머리가 나쁜 게 혼날 일인가? 조금 억울한 면도 없지않아 있지만 당연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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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을 만나면 고향이 충청도냐고 자꾸 물어본다. 나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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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삼아 최근에 만난 사람들의 고향이나 나이 같은 세부 정보를 생각해봤다. 거의 구 할이 기억나지 않았다. 조금 충격을 받았다. 요즘 내 뇌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최근에 딱히 머리를 쓸 일도 없었는데. 아니, 이제 정말 아무것도 안하려고 그러나? 기억력을 높이는 훈련 같은 걸 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그런데 기억력 높이는 훈련을 해야지, 라고 결심한 것도 자꾸 잊어버린다. 벌써 몇 번이나 같은 다짐을 반복하고 있다. 으음. 실은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는지도? 나이가 드니까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기억력이 나쁜 것도 쓸모가 있다. 괴롭고 힘든 기억도 잘 잊는다. 나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잔다.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나아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 우울이 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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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런 점이 내 감성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리움과 쓸쓸함, 향수 같은 것. 무언갈 잊으면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알 수 없다. 남은 건 무언갈 잊어버렸다는 느낌뿐이다. 소설을 쓰면 그런 정서가 늘 조금씩 묻어있다. 뒤돌아보는 것.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바라보는 시선. 어긋나버린 시간과 감정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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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다. 주로 뜬금없고 이상한 포인트다. 그런 게 오히려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