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0일
1
하루는 옆자리 동료가 농담을 해줬다. 미용실 농담이다.
미용사가 머리를 감겨주는 상황. 갑자기 다정하게 말을 건다. 손님, 무릉도원이세요? 손님은 너무 시원해서 자기도 모르게 실실 웃고 있었나? 생각하며 얼른 대답한다. 네, 정말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요. 그러자 미용사가 살짝 당황하며 대꾸한다. 아니요, 물온도 괜찮으시냐구요.
농담을 듣고 엄청 웃었다. 눈물도 찔끔 흘렸다. 다른 동료는 한물간 농담인데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렇게 웃냐며 핀잔을 줬다. 나는 아재라서 아재 개그가 좋은 모양이지요, 라며 너스레를 부렸다. 옆자리 동료는 내가 크게 웃은 게 인상적이었던지, 집에 가서 다른 아재 개그들을 공부해왔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이것저것 연달아 해줬다. 그러나 작정하고 하니까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자 옆자리 동료는 풀이 죽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유, 여자친구가 정말 좋아하겠어요, 농담을 이렇게 잘하시니.
네, 안 그래도 만나면 저어-기 멀리서부터 혼자 막 웃으면서 옵니다. 어차피 웃을 건데 뭐~ 하면서요.
나는 또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만회한 게 기뻤는지 동료도 웃었다.
귀엽고 다정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세상이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면 좋겠다. 진심으로 행복할 것 같다.
2
어릴 때부터 나는 지인들을 못챙겼다.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묻는 일은 드물다. 친구는 있으면 있는거고 없으면 없다는 식으로 산다. 특히 연애를 하면 더욱 심해져서 애인 이외의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러면 그나마 남아있던 지인들도 줄줄이 떨어져 나간다. 이러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은 하지만 바뀌진 않을 것 같다. 굳이 말하면 그런 건 변하지 않는 본성 같다. 나중에 외톨이가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자업자득이다. 받아들이는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이기적인 인간을 챙겨주는 사람이 도처에 있다. 먼저 연락해주고, 안부를 물어주고, 만나자고 말해주고, 그래서 결국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사람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사람에겐 분명 따스함이 있다는 걸 믿게 된다.
어제도 예전에 잠깐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마지막 인사가 22년도 생일 축하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내게 먼저 연락해주고, 시간을 들여 만나기까지 해주다니. 나라면 나한테 안 그럴텐데... 고마운 마음에 밥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따뜻한 마음들을 이용만 하다가 언젠가 크게 벌을 받을 거라는 걱정도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해 다정함을 전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렇게 기브앤테이크 식으로 행동하는 것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으음.
3
내 사인을 궁리해준 사람도 있다. 시안이 가득 그려진 페이지를 보자마자 명치가 살짝 울렁거렸다. 나는 늘 나 밖에 모르는데. 내 생각만 하고 있는데. 세상에는 왜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많을까? 나도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