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설거지할 때 발을 오므리는 습관이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을 오므린다. 세로로 선을 그어 발의 영역을 절반으로 나누었을 때, 안쪽 면은 살짝 들고 바깥쪽 면은 바닥에 붙인다. 어떤 느낌이냐면, 외출하려고 준비를 마치고 신발까지 신었는데 지갑을 깜빡해서 신발을 신은 채로 다시 방안에 들어가야 할 때(따지고 보면 신발을 벗기 귀찮은 게으름 탓이겠지만), 발바닥을 가능한 바닥에 닿지 않으려고 엉거주춤하게 걷는 그 포즈다. 설거지를 하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이유는 모른다. 발바닥에 물이 닿는 게 싫어서 그런가 추측할 뿐이다. 뭔가 꼴보기 싫어서 고쳐보려고 했다. 자자, 집중해. 발바닥 전체를 바닥에 붙여놓고 설거지를 마치는 거야. 그래그래. 잘하고 있어.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엉거주춤, 또 그러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벌어지는 일을 의식적으로 고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아하, 그렇지!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동의 원인이 된 생각이나 관념을 교정해야지! 하지만 기억을 들춰봐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발을 오므리는 습관이 생긴 이유라니? 그런 게 있을리가? 결국 포기하고 발을 오므린 채로 설거지를 했다. 뭐, 생각해보면 그리 심각한 문제도 아니니까.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그릇을 닦았다. 그러면서 내가 발을 오므리게 된 사연에 대해 멋대로 상상해보았다.
어느날, 나는 평소와 다르게 차려 입고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이게 정말 나인가 싶을 정도로, 내 평생의 최고점이라 인정할만큼 멋졌다. 좋아하는 여자와의 데이트 때문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녀를 열렬히 사랑해왔고, 그녀와의 데이트 한 번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내 평생 연애사업의 사활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튼 준비를 너무 빨리한 나머지 출발까지는 한 시간 넘게 남아있었다. 아직 나가면 안돼, 침착해.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의자에 앉았다. 똑딱똑딱.
삼십 분쯤 지나자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보니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는 게 아닌가? 그래, 이것만 해치우고 상쾌한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거야! 나는 외투를 벗어서 내려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상하게 설거지도 평소보다 더 잘되는 것 같았다. 둥근 그릇이든 납작한 그릇이든 얼마든지 쓱싹쓱싹. 그런데 아뿔싸. 무심코 냄비를 닦다가 안에 고여있던 된장국이 내 쪽으로 확 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초인적인 순발력을 발휘해서 몸을 옆으로 돌렸고 된장국의 테러를 피해낼 수 있었다. 곧바로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휴, 하고 방심한 나는 설거지를 마무리하려고 싱크대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그 순간, 바닥에 고여있던 물을 밟고 말았다. 양말이 몹시 축축해졌다.
설거지를 끝내고 고민에 빠졌다. 양말을 어쩐다... 다른 것으로 갈아신을 수는 없었다. 그날의 스타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맞추어 놓은 것이었다. 양말도 단순한 양말이 아니다. 양말 하나라도 바꿔버리면 스타일의 전체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질지도 모른다. 결국 그대로 외출하기로 결심했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해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꿈에 그리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한동안 숲속을 산책했다. 날씨는 무척 화창하고, 바람에는 향기가 묻어있고, 귀여운 아기 새들이 연신 짹짹거렸다. 그녀는 외모도 정말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대화가 더 좋았다. 품위와 배려는 기본이고, 유머에 재치가 있었고, 말을 해야할 때와 들어야 할 때를 정확히 알았다. 곧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해졌다. 모든 면에서 나의 이상형에 적합했다. 데이트는 순조로웠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면 완벽하게 끝난다.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스시 먹으러 가요. 제가 아는 곳이 있어요.
스시를 즐기지 않지만 순순히 따라갔다. 그녀의 단골 스시집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주방장이 문앞까지 나와 깍듯이 인사했다. 바 테이블에 앉으려고 하는데 그녀가 내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그곳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프라이빗한 룸이었다.
나도 모르게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신발을 벗는 순간, 절망적인 예감에 휩싸였지만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룸에 들어가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양반다리를 했는데 발을 도가니 안쪽으로 숨기려고 애썼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낫지 않을까... 그러나 소용없었다. 잠시 후, 꼬릿꼬릿한 된장냄새가 방안에 진동했다. 메뉴를 고민하던 그녀는 갑자기 메뉴철을 탁, 덮더니 말했다.
어휴, 이게 무슨 냄새야? 스시집에서 메주라도 쑤나?
그리하여 나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절로 발을 오므리게 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순순히 인정할 만하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누구든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그런 걸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어쩌면 너무나 충격이 컸던 나머지 나 스스로 기억의 조각을 떼어내, 어딘가 어두침침한 곳에 격리시켰을지도 모른다. 흐음. 그렇다면 또 그럴 수 있지...
가만 보면 이런 것도 나의 습관 중 하나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상상으로 채우는 것. 그것도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으로다가... 흐음, 역시 이상한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