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운 게 싫어서 조금만 기온이 낮아도 옷을 겹겹이 입는다. 요즘 같이 추울 땐 패딩 안에 패딩을 입기도 한다(그래도 춥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래서 한겨울에 가볍게 입은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도 길에서 어떤 여자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무려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심지어 스타킹도 없이!
보기만 해도 춥다. 남이사 뭘 입건 말건이지만, 그 정도면 조금 신경이 쓰인다. 이렇게 추운 날에 굳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이유가 뭘까? 혹시 배경이 여름인 영화를 찍는 중인가? 아니면 다리 전문 모델인가? 어쩌면 기모 스타킹을 입고 나왔는데 찢어진 지도? 어쨌든 나는 피치 못할 사정 탓에 ‘억지로’ 그랬을 거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스로 미니스커트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패피(패션 피플)’일까? 예전에 듣기로 패피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거라던데. 그녀를 보는 순간 곧바로 이해가 됐다. ‘개성’ 역시 패션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니까. 한겨울에 미니스커트라면 차별화된 개성만큼은 확실하게 챙길 것 같다. 그거야 그럴 수 있는데, 그래도 너무 춥지 않나요?
나로 말하자면 패션감각이 형편없는 쪽이다. 보기 좋게 입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 모르니까 단순해진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입으면 그만이다. 나의 겨울 패션 기준은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다’랄까. 그러나 패피는 다르겠지. ‘예쁘지 않은 것보다는 추운 게 낫다’랄까.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체형의 단점을 커버하면서 동시에 보기도 좋은 옷차림. 그렇게 입으면 자연스레 호감이 간다. 한 때는 나도 패피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애써봐도 비웃음을 살뿐,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내 생각인데 패션감각이란 타고나는 것 같다. 그런 DNA가 따로 있을 것 같다. 가끔 보면 옷의 조합과 색의 배열을 기가 막히게 해내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오래 고민하지도 않는다. 한눈에 그런 걸 싹 파악해버린다. 정말 대단하다. 패피와 나 사이에는 범접할 수 간극이 있다. 그래서 한겨울이 되면 나는 겹겹이 싸매 땀을 뻘뻘 흘리고, 누구는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이다.
갑자기 궁금한데, 패피는 외출 준비를 하며 어떤 생각을 할까? 한겨울에 미니스커트를 선택한 과정 말이다. 추위와 패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 패션을 선택하는 걸까? 아니면 날씨보다 의상이 먼저일까? 어쩌면 오래전부터 겨울에 입을 미니스커트를 골라 놓은 건 아닐까? 음, 괜찮긴 한데 이런 건 겨울에 입어야 더 예뻐, 라는 식으로.
그나저나 나는 오늘도 내복에, 경량 패딩에, 롱패딩까지 입을 예정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나 따위가 감히 패피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겠나, 싶다. 어우, 추워.